서른 즈음에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매주 한편씩 내 생각을 글로 옮겨보자고 다짐했다.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며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결국 글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출퇴근이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집에 가고 싶다’ , ‘재미없다’라는 말을 내뱉길 반복하는 특별할 것 없는 내 하루에 글로 풀어낼만한 소재가 없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멈췄다.
그러고는 한동안 해야지 마음만 먹었었던 스피킹 자격증을 다시 준비했다. 지금 당장 필요한 자격증도 아니었지만, 그저 갱신형 인간이 되고 싶었다. 무료한 일상에 가지고 있던 역량마저 만료된 채 살고 싶지 않아서 그냥 한번 다시 해보고 싶었다. 정확히는 가지고 있는 별거 아닌 역량마저 없으면 나는 뭘까, 뭘 하고 사는 걸까라는 근원적인 생각까지 파고들 것 같아 부정적인 생각을 사전적으로 차단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오랜만에 꺼낸 자격증 책에서 ‘이 표현은 평생 써먹어야지’ 생각이 든 표현이 있었는데, 바로 ‘collect oneself’였다. 사전적으로는 ‘마음을 추스르다, 생각을 정리하다’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collect라는 단어에 myself가 붙으니 나 자신을 모은다는 뜻 같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갱신형 인간이 되었다. 목표한 점수는 못 받았지만 그래도 꽤 만족할만한 점수는 얻었으니 이만하면 잘 했다 하며 애써 ‘좀 더 열심해해 볼걸’이란 후회를 위로로 지워냈다.
한 이주를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핸드폰에서 ‘띵동’ 알람이 울린다. ‘꾸준함’이 ‘재능’을 만드니 어서 글로 너를 표현하라고 한다.
글을 잘 쓰는 것, 글 쓸 소재를 생각해내는 것은 다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라서 멋진 문장을 쓰고, 또 계속 글 쓸 거리를 생각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동안 ‘나는 재능이 없나 봐’라는 생각을 했는데, 다시 글쓰기를 다짐하며 나는 왜 글쓰기를 주저하게 될까를 생각해봤다.
글쓰기에 대한 Collecting myself, 마음을 추스르고 보니 나의 욕심 때문이었다. 어쩌면 좀 더 글을 멋지게 쓰고 싶고, 명필이 되고 싶고, 긴 글을 써 내려가고 싶은 그런 욕심. 글을 좀 못쓰면 어때. 글이 좀 짧으면 어때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리면서.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을 보다가 ‘복주머니 열어보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을 보았다. ‘복주머니 안에는 온갖 것들이 들어있는데,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복주머니니까 어쩔 도리가 없다’는 말이었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드는 내 생각이 때로는 내 마음에 들 수도,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복주머니처럼 써보기로 했다.
내 조각, 조각 단편 같은 생각이 쌓이고, 모이다 보면 장편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별 것 아닌 나의 꾸준함이 어쩌면 정말 재능으로 꽃 피울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복주머니 같은 기대감을 가지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