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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Jan 29. 2022

삼순이는 왜 하필 한라산에 가서

 최근 한 예능에서 새해 목표로 한라산을 등반하는 에피소드를 보았다. ‘새해 첫날 한라산 등반이라니! 아이고, 왜 그랬을까?’라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혼이 다 빠져나가는 출연자의 모습을 보며 지난날의 내가 생각나서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해본 사람만 아는 공감적 수치랄까.

 

 그러니까 내가 한라산에 오른 이유는 90년대 인기 드라마였던 <내 이름은 김삼순> 때문이었다. 극 중 주인공 삼순이는 이름처럼 삼십 대 초반의 노처녀로 나온다. 이별 후 새 삶을 살기 위한 다짐으로 한라산에 오르는데, 어린 나이에 그 장면이 꽤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었다. 서른이 되던 해, 그랬으면 안 됐는데, 나는 한라산 등반을 목표로 삼았다. 나이 서른이 인생에 꽤 큰 변곡점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앞으로의 인생을 준비하며 마음 정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쯤 되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어느 코스로 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한라산 탐방로 중 가장 힘들다는 관음사 코스로 정했다. 이쯤 되면 체력 단련을 했어야 했다. 하다못해 예능에 나온 출연자도 체력단련을 열심히 하고 갔는데, 나는 한라산을 너무 얕봤었다. 휴가 전날까지 일을 한다는 핑계로 나는 내 몸을 돌볼 시간도 없이 한라산으로 향했다. 그저 마음 한편에는 ‘뭐, 그래 봤자 산인데, 오르다 보면 정상이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바보 같으니라고.


 오전 6:50

 그래도 내 체력을 알았기에 동이 트기 전, 가장 이른 시간에 산행을 시작했다. 삼각봉 대피소에서 김밥 먹어야지라는 야무진 생각을 가지고,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다 생각하며 비장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관음사 탐방로 입구에서 탐라계곡 목교까지는 꽤 수월했다. ‘이 정도면 뭐, 한라산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했다. 걸음걸이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의 자취도 남겼던 것 같다. 한라산의 1/3도 안 왔는데 말이다. 내가 점점 말이 없어지고, 생각이 없어지기 시작한 것은 길게 이어진 계단을 보면서부터이다. 가파르고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숨이 넘어갈 듯 오르며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했었다.


 해발 970m ~ 개미등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몸이 무거웠고, 그 몸을 지탱하는 두 다리에 무게감이 더욱 가중되었었다. 주변을 둘러볼 정신도 없어서 발끝만 바라보며 걸었다. 누가 한라산이 절경이라고 했던가.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고뇌하였다. 가장 눈물 났던 순간은 탐라계곡에서 개미등까지의 1.7Km였다. 이미 체력은 바닥이 났는데, 도대체 얼마나 남았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많이 왔다 싶어 표지판을 볼 때면, ‘응 아직 아니야’라며 놀리듯 0.7Km밖에 못 온 현실을 마주하였다. 희망과 좌절을 반복하면서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이상하게 백록담은 꼭 봐야겠다 싶었다. 삼순이처럼. 정말 창피한 이야기지만 그때 눈물을 흘렸다. 더는 갈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진 않아서 눈물이 났다. ‘포기하자’와 ‘해야 해’라는 양가감정 속에서 정말 나는 치열하게 자신과 싸웠던 것 같다. 정말이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오르며 웃음기가 사라졌다. 윤종신 씨는 한라산에 올랐던 걸까? 어떻게 그런 가사를 썼는지 머릿속에서 자꾸만 오르막길 가사가 맴돌았다.


 개미등 ~ 삼각봉 대피소

 개미등에서 삼각봉 대피소까지의 1.1Km는 긴 터널의 끝에 빛이 보이는 것 같은 순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혼미한 정신이었어서 빛이라 생각한 거지 사실은 눈이었다. 한라산은 자신을 얕본 나에게 정말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한라산에 무지했던 나는 한라산에서 사계절을 겪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하필 내가 한라산에 올랐던 날은 흐렸던지라 안개가 자욱했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눈꽃이 폈다. 바람막이만 걸치고 갔던 나는 추위와도 싸워야 했다. 더 혹독했던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삼각봉 대피소까지 올라가야 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 몸으로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생각했다. 쓰러지고 싶은 몸을 이끌고 어떻게 올랐는지도 모르게 올랐던 곳에서 삼각봉 대피소를 봤을 때, 약간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백록담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해서. 정말 바보 같으니라고!


삼각봉 대피소

한라산에 오르기 전, 삼각봉 대피소에 오르면 다들 컵라면에 김밥을 먹길래, ‘나도 챙겨 올걸’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오르기 전에 말이다. 막상 삼각봉 대피소에 올랐을 때, 나는 먹을 힘도 없어서 산에 오르기 전 샀던 김밥도 먹지 못했다. 내가 해발고도 1500m까지 오르며 먹은 거라곤 대피소에서 옆에 앉은 분이 줬던 귤 하나였다. 여기서 열댓 시간은 쉬고 싶었는데, 10분도 쉬지 못했다. 백록담까지 가려면 서둘러 걸음을 옮겨야 했기 때문에 찰나의 휴식으로 가출했던 혼만 되찾아서 갈 채비를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삼각봉 대피소를 떠나면 꽤 희망이 보인다. ‘이제 다 왔겠지?’ , ‘이제 조금만 더 오르면 백록담이겠지?’ 싶어서 말이다. 한라산은 나에게 말한다. ‘어림없지’라고. 한라산이 절경이라고 하는 이유는 아마 이구간부터이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본 것이라고는 안개와 눈  그리고 안개와 눈 또다시 안개와 눈뿐이었다. 내가 오르는 게 한라산인지, 사실 여기는 천국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제정신은 아니었다.


 샘터 ~ 백록담

 그러니까 마지막 2.7Km는 ‘이러다 정말 죽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눈비가 내려서 바람막이만 덜렁 입고 한라산을 오르려 했던 어리석은 나는 추위에 고통받았고, 그 추위와 싸울 힘은 더더욱 없었다. 내가 미쳤지라는 생각만 했었다. 내가 왜 한라산에 오르려고 했을까, 내가 왜. 그렇게 번뇌에 가득 차 오르다 보니 사람이 길게 줄을 선 정상을 마주했는데, 이게 또 드라마와는 달랐던 게 한라산 정상에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지라 참 많이 당황했던 것 같다. 삼식이가 어디 있는지, 앞으로 인생의 다짐을 가질 시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눈발과 안개에 백록담은 당연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조차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살이 애리는 고통을 참아내며 나는 한라산 정상에 올랐음을 기록했다. 삼순이는 왜 하필 한라산에 올라와서…라고 괜스레 원망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올랐으면 다시 내려와야 하는 법. 한라산은 끝까지 나에게 교훈을 안겨줬다. 예를 들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라던가,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라던가…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어둠 속에 올랐던 한라산을 누구보다 느리게 어둠을 뚫고 내려왔다. PM 7:00 내 뒤로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가장 한라산을 오래 즐기고 내려온 사람인 것이다. 첫 타임에 올라서 가장 마지막에 내려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는다. 나도 이런 내가 웃기다. 한라산을 한 번도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는데, 아마도 그 사람은 내가 될 것이다. 이 고통이 망각될 때쯤 또 치기 어린 행동으로 오르게 될지 모르지만 아직은 그 고통이 생생하다.


 그래도 내가 서른에 한라산에 오르며 깨달은 것은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약하다고만 생각한 내가 어쩌면 꽤 단단한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생겼던 것 같다. 사람들은 등산을 인생에 비유하곤 하는데, 한라산을 오르며 그 의미를 얼핏 알 것도 같았다. 백록담만을 바라보며 오를 때, 나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고 걷다 보니 백록담을 만날 수 있었듯,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길에서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내가 목표하던 바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마도 나에게 이만큼 고통을 안겨준 산도 없었기에 그만큼 값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난 가끔 살아갈 때 한라산을 오르던 그때를 생각한다.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았던 그날의 나를 떠올린다. 어쩌면 내가 서른을 맞아 다시 새기고 싶었던 마음가짐은 온갖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나 아녔을까. 그리고 그걸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서 서른 살의 나는 한라산에 오르지 않았나 싶다. 아마도 삼순이도 그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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