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듯 살아가기로 했다.

아이유의 분홍신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길을 잃었다. 어딜 가야 할까.”

요즘 내 상태가 이렇다. 길을 잃었다. 완전히.

한동안은 두문불출 집과 회사만 오갔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만나서 시시콜콜 사는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피로했다. 나의 일상은 어제와 같고 내일도 같을 텐데, 매번 듣는 이 사람들도 피곤해하지 않을까 싶어서 만남을 멀리했다.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지만, 불합격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었기에, 요즘 어때 묻는 말에 ‘항상 똑같지 뭘.’이라는 대답만 반복할 뿐이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회사가 싫다. 이렇게 밥벌이하는 내가 싫은 건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그 긴 시간만큼 점점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커져서 힘들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나는 목표점을 향해 트랙 위를 달리는 러너가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만 뛰면서 앞서가는 사람들을 보는 루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기분과 평생을 싸워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지 싶은 게 요 근래 나의 근황이다. 잘 못 살았나? 싶다가도 열심히 살았는데 하며 다독이다가도 열심히 산 게 잘 못 된 건가? 회사에서는 잘하는 게 중요한데… 싶다가도 못한다고 혼난 적도 없는데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생각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돌뿐이다.

남과 비교하지 말자고,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고. 이 세상 모든 현자들이 말해준 인생의 교훈을 곱씹어가며 나를 달래보아도 요즘 나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이렇게 살아가야 하나. 완전히 길을 잃은 기분이다.

표류하듯 살아야겠다고 생각이 든 건 아이러니하게도 열심히 준비했던 시험에서 불합격을 마주했을 때였다. 평소 같았으면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에 자책했을 텐데, 매일을 고3 수험 생활 때보다 열심히 그리고 간절하게 준비했기에 잠깐 눈물 한번 훔치고 털어냈다.

‘다시 하면 되지, 될 때까지 하면 되지.’

10대부터 20대까지는 스프린터처럼 살았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정해 놓은 기준치에 못 미칠 때마다 자책하고 나 자신이 별 볼 일 없어 보였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어도 지금의 모습이라면, 굳이 발버둥 치며 달릴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0대는 표류하듯 살아볼까 싶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으면, 그 의미를 찾으려고 아등바등하지 말고, 유유히 살아가다 보면 찾아지겠지.

표류해서 도착해야 할 목적지는 있으니, 그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 주변도 돌아보고, 잘 못된 게 있으면 정비도 하고. 망망대해에서 아무리 노를 젓는다고 육지에 빨리 닿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인생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싶었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결과 앞에 초연해지기도 했다.

여전히 길은 잃은 것 같고, 이따금씩 이게 맞나 덜컥 겁이 나기도 하지만, 결국엔 내가 불행하지 않고 살아가면서 의미를 찾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길을 잃었어?

그럼 천천히 찾아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