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아는 방법
그런 이야기가 있다.
"오스카상을 받는 영화는 5점 만점에 3점짜리 영화"
오스카를 타기 위해 모두의 취향을 아우르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특별한 개성을 너무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만들려면 모두가 다르게 느끼는 요소를 줄여야 하니까. 그래서 반대로 본다면, 개인에게 5점짜리 영화는 충분히 개성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말 좋아하는 영화 하나가 개인의 취향을 매우 잘 드러낼 수도 있다.
좋아하는 영화를 온전히 즐기고 느끼기 위해서는, 그 영화를 이루는 모든 요소를 하나하나 소화해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 포스터의 디자인과 색감부터, 폰트의 모양새, 영화 속 배경음의 크기, 색감, 인물들의 연기와 캐스팅, 감독의 취향이 반영된 스토리와 대사, 오브제와 미장센, 심지어 클리셰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보는 것들과 쉽게 놓칠 수 있는 것 들도 바라봐야 한다. 그 모든 요소를 통해 영화가 전달하는 감정과 생각을 받아들이고, 자기만의 해석과 반응을 만들어낼 때 진정으로 그 영화를 소화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이 많은 요소들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왜 이 장면이 이렇게 연출되었을까?" "이 캐릭터는 왜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을까?" "이 카메라 구도는 의도된 것일까?" "저 남자는 무엇이 두려운 걸까" "저 여자는 무엇을 기대할까". 이런 작은 질문들이 모여서 당신의 취향을 풀어내는 단서가 된다. 그리고 수많은 질문에 대해 답을 찾는 과정은,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스타일에 끌리는지 깨닫게 해 준다.
꼭 영화를 통해서 자신의 취향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음악이 될 수도 있고 게임이 될 수도 있다. 많은 미디어와 콘텐츠를 통해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또한 미디어와 콘텐츠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와 인간관계에서도 우리는 질문을 무수히 던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질문과 질문에 답하려는 노력이다.
한 가지 무언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면 당신은 예민한 사람이다. 이 글은 취향을 아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 예시로 좋아하는 영화라는 걸 들었는데, '취향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좋아하는 영화'를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아마도 이상함을 느낀 독자라면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실은 '좋아하는' 영화인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영화가 중요한 포인트이다.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영화에 대해서는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있기 때문에 질문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을 답하면서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영화를 진짜 좋아할 수도 있고, 알고 보니 당신의 취향이 아닌 것을 밝혀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질문을 했고 답을 하면서 당신의 취향을 조금이라도 찾아냈다는 것이다.
그렇게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질문할 수 있고, 따라서 우리는 세상 속 많은 것들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질문을 하려면 관심이 있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면 분명 아주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내가 조금이라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관심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질문을 해보자.
취향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고정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취향이란 것은 분명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모아둔 '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취향의 방향을 알 수 있다. 데이터와 경험이 쌓이고, 그 경험이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다 보면 취향을 더욱 명확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질문을 아주 많이 던져보자. 때로는 사소한 질문일지라도, 그 질문을 자주, 깊이 생각해 보는 습관을 가지자. 그 데이터를 쌓고 기록하자.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당신만의 취향이 선명해져, 당신만의 보물섬인 취향을 가리키는 방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작가는 작가만의 5점 영화가 여럿 있지만 하나 소개하자면 역시 '붉은 돼지(미야자키 하야오, 1992)'이다
- 자면서 꿈꾸다가 본 주제가 떠올랐다. '기록해야 돼', 하면서 깼다. 살짝 미쳐가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