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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아데스 Dec 05. 2023

별을 담은 집

노매드(Nomad)는 원래 ‘유목민’을 뜻하는 용어로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책에 나오는 철학적 개념이기도 하다. 이 용어가 대중적으로 유행하면서 현실을 반영한 잡 노매드(job nomad), 하우스 노매드(house nomad)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유목민에게도 정착민에게도 필요한 집, 집이란 무엇일까. 긴 여행을 떠나도 언제나 돌아오고 싶은 곳. 나에게도 그러한 집이 있다.

 

맞벌이로 얼굴 보기 힘들었던 우리 부부. 직장 생활과 각자의 삶을 사노라 정신없던 어느 날, 뜬금없이 도시 외곽에 집을 짓고 싶다고 했다. 평소 세속적인 관심은 둘 다 시큰둥한 편이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남편은 마음껏 음악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별을 좋아하는 나는 밤마다 별을 볼 수 있는 삶이 될 거라 했다. 불확실한 미래지만 그러한 소망을 한다는 것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

개성 있는 집을 짓기 위해 자료수집과 설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여행을 다니면서 자나 깨나 집에 대한 구상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집이 완공되었을 때 그 감동은 말할 수 없었다. 짐도 들어오지 않은 빈집에 의미도 모르면서 밥솥 하나 덜렁 들여놓고 잠자던 기억이 생생하다. 1층의 넓은 거실은 음악 공간, 2층의 작은 서재와 야외 덱(deck)은 사색 공간이었다. 밤하늘의 별자리는 물론이고 월식, 유성우가 있는 날이면 누워서 밤새 관찰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당시 잘 심지 않았던 자작나무는 우리 집의 상징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새들의 보금자리로, 한여름의 그늘 제공자로 함께 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반 고흐의 ‘Starry night’에서 Starry House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별을 담은 집, 별담집!

 

5년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나무 계단과 바닥이 여기저기 갈라졌다. 리모델링을 생각해야만 했다. 두 번 다시 집 짓지 않겠다던 남편의 의지보다 집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더 컸다. 나무 계단은 돌계단으로, 1층의 야외 덱은 새로 교체했다. 2층 역시 하나의 커다란 공간으로 바뀌었다. 가족은 물론이고 여러 사람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심지어 길을 가다 들른 사람도 간혹 있었다. 또한 봄, 가을의 하우스 콘서트로 음악인들과 그것을 즐기러 온 많은 사람이 별담집을 찾았다. 클래식 연주자들, 재즈 가수들,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별담집에서 공연했다. 되돌아보니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10년 넘게 이 집에 살아오면서 기쁨도 많았지만 슬픔도 여러 번 있었다. 집이 완성되기 몇 달 전, 어머님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새로 지은 집에서 행복한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결국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떠올리면 눈물부터 고이는 반려견 우리 백두. 겨우 몇 년을 같이 생활하고 하느님 품으로 먼저 떠났다. 상실의 슬픔에서 허덕이던 그 당시, 백두와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집에서 한동안 생활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집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고 마치 집이 ‘괜찮다. 다 괜찮다.’라고 내게 위로하는 것 같았다.

 

기쁨과 아픔을 같이했던, 많은 추억을 공유한 집이 여기에 있다. 삶의 기록이 여기에, 그리고 그동안 집과 함께 세월을, 살아온 내가 여기에 있다.

영어 속담 ‘However humble it may be, there is no place like home.’라는 말이 아련하기만 하다. 돈키호테가 긴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는 곳, 뼈만 남은 청새치를 잡고 돌아온 산티아고가 깊은 잠에 빠진 바로 그곳. 나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집, 그런 집이야말로 누구나 꿈꾸는 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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