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세상 살아가면서 남을 세심하게 배려한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어떤 복잡한 상황이 생기면 자신이 휘말릴까 봐 이기적으로 되는 게 요즘 흔한 모습인데.
집에 도착해서 차 트렁크를 여는데 신발 한 짝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운동화 한 켤레를 차 위에 두고 운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멍청할 수가. 이것저것 끄집어 정리한다고 분주했던 게 불과 1시간 전 일이었다. 좋게 생각하면 운전 길의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고 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운전자에게 위험을 준 날이었다. ‘한 짝은 어디로 갔지?’ 이런 적이 없었기에 온갖 어지러운 생각으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아무리 낡은 운동화라도 이렇게 작별하는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다른 운전자에게 피해가 없기를 바랐다. 대충 짐을 내려놓고 급히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집으로 오던 길을 최대한 정확히 기억해야 했다.
검은색 바탕에 흰색 로고가 있는 운동화였다. 신기하게도 운동화를 샀던 가게와 그 신발을 신고 만났던 사람들이 간간이 떠올랐다. 아니 아꼈던 신발이라 애써 떠올렸는지 모른다. 머릿속은 온통 운동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좁은 도로에서는 반대편 주행 차로를 확인하기가 쉬웠다. 빨리 발견되기를 기대하면서 이쪽저쪽 살폈다. 봄을 만끽하려고 강변에 잠시 주차했던 기억도 났다. 내가 머물렀던 장소에는 벌써 다른 RV차 한 대가 시선을 가로막고 있었다. 부근에 차를 두고 주변을 살폈다. 신발이 떨어져 있나 차량 아래쪽을 확인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 의해 버려졌나 싶어 잔디밭과 강변 근처를 한동안 돌아다녔다. 신발은 없었다.
공허한 마음으로 강변을 빠져나와 도로로 차를 진입시켰다. 중앙분리대가 설치된 곳은 반대편 차로를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끝까지 가보고 신발이 없으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확인하리라 마음먹었지만, 헛헛한 기분은 어찌할 수 없었다.
약 40분쯤 달렸을까.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출발 지점 쪽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저 멀리 중앙선에 신발 한 짝이 보이지 않는가. 눈을 크게 뜨고 보니 내가 잃어버린 바로 그 신발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신발이 중앙 분리선 위에 정확하게 올려져 있었다. 누군가가 주인 찾아가라고 그 자리에 둔 것이 확실했다. 근처 골목에 주차한 뒤 건널목을 건너면서 재빨리 신발을 가져왔다. 도로 위 떨어진 운동화로 자칫 위험할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의 시간을 줄여가며 애써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그분이 궁금했다. 심란했던 시간은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마음이 훈훈해졌다. 내가 무사히 신발을 찾아갔는지 어쩜 확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중앙 분리선에 ‘감사합니다!’라는 팻말을 세우고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약간의 상처가 난 신발 한 짝을 쓰다듬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나 같은 사람이 있나 달리는 차들의 지붕을 끊임없이 확인했다.
‘한 사람의 언어나 행동이 다른 사람의 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라는 최근에 읽은 문장이 기억났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선행이 나의 뇌에 작용해서 세로토닌을 분비하고 나를 행복하게 했다. 숨은 천사 한 사람의 행동으로 평범한 하루가 특별한 날이 되었다. 적어도 그 순간은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낡은 명언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 날이었다.
지인 중에도 봄 햇살 같은 숨은 천사가 있다. 오랜만에 그분에게 연락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