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레이아데스 Jun 01. 2023

이끼가 가르쳐준 시간

아침 6시. 붉은색 바탕에 M자 모양의 포크 그림자가 모닝커피를 가리킨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전 8시에는 머핀, 11시에는 베이글의 모습과 겹친다. 시선을 끄는 맥도널드 회사의 기발한 옥외 광고 게시판이다. 아침 메뉴를 추천하기 위해 해시계를 상품 광고에 응용한 것이다. 흐린 날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참신함과 창의성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산불조심이라는 안내문이 여기저기 보이는가 싶더니 많은 비가 내렸다. 오랜만에 집 앞 개울로 나가보았다. 그전과는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에 마음마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가운데에 있는 돌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다슬기가 많았다. 수초들은 물살 따라 춤추고 있었고 피라미도 보였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몸의 균형을 잡으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온통 이끼투성이가 아닌가. 건조한 날씨에 죽었다고 생각한 이끼들이 신기하게도 살아난 것이다. 그 생명력과 회복력이 놀라웠다. 펼쳐진 모습이 마치 초록색 양탄자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평소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던 이끼가 그 어떤 형형색색의 봄꽃보다도 예뻤다.

수억 년 전, 이 땅에 출현해 많은 변화를 겪었으리라. 가만히 보니 키 작은 식물들이 이끼 사이에 자라고 있었다. 작은 벌레들도 보였다. 시기나 경쟁은 없었다. 그야말로 서로 배려하는 공동체처럼 보였다.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는 그들의 세상은 아름다웠고 더없이 평온했다. 돌의 어깨를 빌리고 물과 공존하면서 작은 높이로 집단을 이루며 살고 있는 그들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문득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은 그저 시간일 뿐이고 물소리만 들렸다. 혹독한 환경을 꿋꿋이 견뎌온 결과, 마침내 시간이라는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 같았다.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시간을 쪼개고 연신 시계를 보며 시간에 종속되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는 달랐다.

 

입대 전 심란한 마음에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강물에 던졌다는 지인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 삶에 있어서 하루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시계지만 흐르는 시간이 얼마나 초조하게 느껴졌을까. 그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복무 기간이 길었고 사회와 단절되는 정신적 압박감도 심했다. 몇 달 전부터 입영 준비를 했는데 막상 날짜가 다가오자 흐르는 시간이 몹시 두려웠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흐르는 시간이지만 그 빠르기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입영 직전까지 ‘기억의 지속’이라는 달리의 그림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한다. 살아오면서 그렇게 시간이라는 개념에 몰두한 적이 없었다고도 회상했다.

 

허리를 일으켜 세우고 발걸음을 옮겨 개울가를 빠져나왔다.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담담히 현재를 누리고 있는 이끼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우리는 왜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시간에 구속되어 살아갈까?’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스스로 반문했다. 늘 투덜대며 살아온 시간이 떠올랐다. 진정한 자유란 시간의 틀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이끼처럼 그 시간을 온몸으로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삶의 목표가 행복이라면 그 시간을 성실히 사는 것,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삶은 아닐는지.

 

이끼보다 더 작아져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라면만이 내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