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레이아데스 May 26. 2023

라면만이 내 세상

엄마가 첫딸인 나를 가졌을 때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이 등장하였다. 생일로 따지면 라면이 보름 정도 빠르지만, 동갑내기인 셈이다. 만삭이던 엄마는 ‘라면을 먹고 싶다’라고 외할머니께 부탁했다. 그 당시 가격은 10원이었고 얘기를 들은 외삼촌이 한가득 사 오셨다. 하지만 끓여서 먹으려는 순간 냄새가 역해서 거들떠보지도 않으셨다 한다. 그렇게 태어난 딸은 라면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 되었으니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라면 먹을래요?”라는 명대사는 아닐지라도 라면에 대한 추억이 한두 가지 없는 사람이 있을까.

대학교 1학년 때 친구가 강의실로 찾아왔다. 미팅을 주선했는데 한 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팅 자체를 싫어하던 나였지만 할 수 없이 그 자리에 나가게 되었고 역시 대타로 나온 공대생과 짝이 되었다. 우리는 커피숍을 나와 근처 분식점으로 향했다. 의견 일치로 라면을 주문했다. 멜라민 용기에 고춧가루가 뿌려진 라면은 매웠고 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먹지 못했다. 꼬불꼬불한 그 음식은 우리의 만남을 한동안 이어주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소한 일 때문에 이별한 그날에도 어김없이 라면이 있었다. 그 음식을 앞에 두고 눈물 흘린 적도 많았다. 그러나 먹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점심시간, 동아리 모임 등 대학 생활하는 동안 소중한 추억과 늘 함께했다.

 

제주도로 졸업여행을 간 대학 4학년 때 일이다. 지금은 비행기로 빠르게 갈 수 있지만, 그 당시는 배가 보편적인 운송 수단이었다. 교수님, 대학 동기들과 함께 대형버스에 몸을 싣고 부산으로 향했다. 오랜만의 여행이라 모두 들떠 있었다. 노래 부르고 많은 얘기도 나누었다. 항구도시에 도착한 후 저녁을 먹었다. 배에 오르기 전 멀미약도 잊지 않았다. 잠만 자고 나면 아침에 도착해 있으리라 꿈에 부풀었다.

그날따라 파도가 심했고 친구들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멀미를 시작했다. 화장실은 만원이었다. 어릴 적부터 멀미가 잦았던 나는 불안한 마음 그 자체였다. 배가 몇 차례 출렁거리는가 싶더니 속이 메스꺼워 손으로 입을 막았다. 빠른 발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세면대 뒤로 긴 줄이 나 있지 않은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멀미로 속이 뒤틀리는 고통보다 더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차례가 되어 세면대 앞에서 헛구역질과 함께 음식물 일부를 게워 내고 있는데 옆 세면대를 부여잡고 있던 남자 동기가 나를 쳐다봤다. 그런데 그 친구의 콧구멍에서 퉁퉁 불은 라면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절체절명의 상황에 있는 그 친구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웃느라 정신이 없었고 한편으로는 더 고통스러웠다. 제주도 여행의 반은 멀미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첫사랑 이별에도 끄떡없던 라면 사랑이 친구가 괴로워하던 모습과 겹쳐서 한동안 입에 대지 않았다. 친구 역시 트라우마 때문에 그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았다.

 

라면의 역사만큼, 살아오면서 다양한 종류를 먹었다. 동남아, 일본 등 국외를 여행하면서 여러 유형의 맛도 경험했다. 각가지 라면 요리법도 시도해 보았다. 결국, 가장 좋아하는 나만의 방법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새우나 문어 등 해물을 넣은 라면도 맛있지만 물 500mL에 라면과 브로콜리를 듬뿍 넣는 요리법이 나에게는 최고다. 달걀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이다. 채소가 들어있으니 ‘라면은 몸에 좋다’라는 주문을 스스로 걸기도 한다.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비 오는 날 먹는 라면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슬플 때나 즐거울 때, 외로울 때나 행복할 때, 항상 내 곁에서 함께 살아온 인생 음식, 라면.

 

라면만이 내 세상이다.

작가의 이전글 기억의 편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