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의 존재

삶의 압박에 시달리면서 존재를 펼칠 수 없는 위축된 마음의 서사

by Obed Park

"브런치에 가서 글을 좀 써 보는 게 어때?"


몇 년 전 친구가 나의 글을 보고 건넨 조언이다. 모 SNS에 뻘글이나 올릴 줄 알았던 나도 브런치는 알고 있었다. 글 좀 쓴다고 하는 글쟁이는 모여있는 그 사이트.


'내가 거기에 뭐 좀 쓴다고 누가 읽기나 할까?'


나의 글이나 표현력에 대한 자신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스스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혹은 얼마 되지 않은 삶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찍는 위축된 마음이 글에 배일까 걱정되었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자신감에 차있고, 밝고 당차게 뻗어있는 발자취를 대부분 좇길 원한다. 그러나 실패한 혹은 실패감에 가득 차있는 이야기는 철저히 외면받는다. 패배자의 서사는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고독과 죽음의 악취를 물씬 풍긴다.


몇 년이 훌쩍 지나 어느덧 30대에 접어들고 대학원까지 졸업한 시점에서, 나는 문득 인생의 막다른 길을 느낀다. 존재는 형(形)을 갖출 새도 없이 육중하고 비대한 타자들과의 부대낌 속에서 납작하게 엎드려 간다. 거인들의 쿵쾅거리는 발걸음에 즈려 밟히는 마음은 그 무게와 힘을 견디지 못하고 저 아래 작은 틈새로 스며든다. 숨 쉴 틈을 찾아 헐떡이지만 그 틈새는 너무나 좁고 어둡다. 지면 위 쿵쾅거리는 발걸음에 맞춰 심장 박동이 점점 커진다.


본고에 무엇을 적을까 고민했다. 실패로 점철되었다고 자책하는 위축된 마음에는 절규가 가득하다. 자신에 대한 원망, 세상에 대한 원망, 미래에 대한 무망감, 그럼에도 무언가 해보려고 악착같이 메달리지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의 비명은 잘 들리지 않는다. 나름 남자다운 외모, 운동으로 다져진 몸, 유복하고 화목한 가정환경, 아직은 젊음이라 칭할 수 있는 유망한 시절에도 불구하고 냄새나고 은밀한 틈새로 밀려나 부르르 몸을 떨고 있는 충혈된 두 눈의 작은 괴물이 있다.


괴물은 작은 균열 속에서 숨 쉬면서 악의와 공포로 몸부림을 친다. 작은 균열이 대지의 판(板)을 가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틈새로 새어나오는 분노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기를 바란다. 틈새가 광활히 벌어지고 지상이 추락하는 종말의 세계. 곧 틈새의 글은 언젠가는 맞이할 삶의 끝을 향해 뿌려지는 뒤틀린 내면의 독백이다.


틈새는 한편 도피처이며 위로의 공간이다. 괴물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압력에 일그러진 존재들과 틈새에서 조우한다. 괴물과 마찬가지로 틈새의 존재들은 저마다 잔뜩 찌푸린 인상을 하고서 웅크려 이를 갈고 있다. 추악하고 적대적인 이 마음의 찌꺼기들은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다. 외모 지상주의를 넘어 정상적이고 모범적인 정신까지 추대받는 지상에서 틈새로 도망친 이들이 있다. 틈새는 그들이 한껏 침을 뱉고 목놓아 울 수 있는 좁디 좁은 쉼터가 되기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첫 글을 쓴다.


나는 틈새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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