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키우기

by Obed Park

한 번도 상처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고 맺어지는 사랑은 없을까. 난 늘 꿈꿨다. 그 사람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자체로 죽지 못하는 것이 살아있는 것이 되는 상태. 마치 피그말리온이 그러했듯 나는 언제나 완벽한 사랑의 형상을 조각해왔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했다.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와 헤어질 때마다 조각난 마음의 파편들을 쓸어 담으며 든 생각이었다. 그녀와 이별한 것도 그 사람을 사랑한 탓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통해 나의 조각된 사랑에 다가가기 원했고, 그 사랑이 담긴 마음이 깨져서 아팠다.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사랑하기에 마주한 이별이었다.


누구에게나 얼룩진 마음이 있다. 이전의 관계를 통해서든, 현재의 관계를 통해서든 상처받고 상처 주는 마음의 가시는 인간 그 누구에게나 돋아있다. 그런 면에서 사람은 장미 같다.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움켜잡으려 할수록 피 흘리게 하고, 그 혈액을 진액 삼아 빨갛게 꽃 피우는 존재. 섣불리 다가갈 수도, 품을 수도 없는 고독의 경계 안에서 상대를 유혹하는 존재.


관계의 상흔이 누적될수록 마음속 이상(理想)의 조각은 부식하고 형태를 잃어간다. 더 이상 덧붙일 수 없을 정도로 조각(彫刻)은 조각나 있다. 그러나 내 마음의 틀이 무너지고 비로소 누군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내 안에서 공생할 수 있는 때에 다다르면, 정작 내 품은 가시에 찔려 구멍이 송송 난 채로 널브러져 있다. 그래서 낮은 기대와 내려놓음은 사랑보다는 사람을 보게 만들지만 가슴은 더 이상 설렘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생기 있던 어린 날의 환상과 열정, 가슴앓이는 거울 앞 차갑고 무미건조한 표정에서 이제 찾아볼 수가 없다.


뜨거운 사랑에 대한 냉소만이 남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로 그 사람을 틀 안에 가두려고 했던 모든 시도는 새장 안에 새를 가두는 것과 같다. 너를 사랑한다는 말로 내게 예속시키려 했던 중심에는 이상(理想)으로 짜인 창살이 있다. 그렇기에 마음의 틀이 무너지는 것은 한 개인에게 있어 극심한 고통을 자아내지만 새가 갇힌 새장을 무너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창공을 비행한다는 것은 자유를 연상시킨다. 새는 드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오가는 존재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새가 새답게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주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여기를 집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마치 잃어버린 소유물을 찾는 마음으로 한 사람을 바라보려고 한다면 사람을 사랑에 가두는 꼴이 된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상대방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임과 동시에 길들여진 짐승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더 이상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거친 산악을 가로지르는 모험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의 이야기는 고요한 집, 창문을 열어놓고 가지처럼 손을 내밀고 있는 이의 기다림을 담아낸다. 파란 하늘을 자유롭게 비행하다가 쉼을 필요로 할 때 언제든 내려앉아 편히 노래할 수 있도록 나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바라보려고 한다.


창밖 너머로 하늘을 본다. 날씨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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