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해 쓴다는 것

<The Whale>을 보고 나서...

by Obed Park

꽤 오랜 시간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작가님의 글을 기다리고 있어요.'라는 브런치 알림이 울릴 때마다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문득 그리고 섬뜩 두려워졌다. 글을 잘 쓰고 좋아한다는 놈 치고는 정기적으로 게재를 하는 타입도 아니고, 처음 브런치를 시작했을 당시 내 마음을 연주하고 있는 이는 따로 있던 탓에 게시글은 온통 그 로맨스로 치장된 욕망에 대한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글을 쓺으로써 곰팡이 핀 카펫 아래를 들춰내듯 지난 글을 마주하는 것이 그래서 역하고 부담스러웠다.

또 그렇게 그리 길지 않지만 우주가 피고 지는 듯한 마음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 나의 이야기들을 돌아보며, 세상의 중심이던 그녀 혹은 그녀들에게서 삶의 중추를 되찾기 위해 많이 울고 고민하고 이를 악 물었다. '나'라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 없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희망과 낭만을 나를 사랑해줄 타자에게로 투영했고 내가 그렇게 자신하던 나는 사실 빈털털이라는 것만 알게 됐다. '나'란 나에게 공허했고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 더욱 이상적인 나만 망상어리게 좇아왔던 결과, 구름을 쳐다보면서 낭떠러지로 걷고 있는 내가 있었다.


어느덧 2년이나 이어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세션에서 원장선생님께서 밝은 미소로 내게 언급하셨다. "이제 2주에 한번만 나오셔도 될 것 같아요." 굴곡진 마음 판(板)의 경계부를 견뎌내온 생존자로서 이제는 나도 내가 숨을 헐떡이며 비탈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의식을 기르고, 허황된 이상이 아닌 지금-여기에서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을지라도 노력하고 있는, 성장하고 있는 나를 긍정하려고 노력했다. 자기에 대한 인지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고급지게 표현할 수 있으려나. 아무튼 한번도 먼저 저렇게 제안하신 적이 없었는데, 그도 나도 나에게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직감한 듯 했다.


'틈새'라고 표현하는, 세상의 빛이 닿지 않는 작고 균열진 곳 속에 숨어서 울고 있는 나 자신이 그동안 내가 바라보고 있는 나였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실체가 아니었다. 생명은 알을 깨고 밖으로 스스로 보고 걷기 시작한다. 한때는 나를 보호하고 따스히 품어주던 알의 경계는, 부화를 앞두고서는 쪼아서 뚫고 나와야할 삶의 경계가 된다. 마찬가지로 모진 10대와 20대를 겪으며 숨어들었던 '틈새'라는 균열은 나를 둘러싼 삶에 대한 인식을 깨뜨릴 때가 되었다는 창조적 균열의 신호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나의 사랑은 이미 실패하고 무용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아파하고 상처받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고 더 큰 꿈을 향해 삶의 의욕을 불태우면서 성장해온 한 사람이 보였다.


정작 나를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대단한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인양 호구 같이, 때로는 병신같이 더 이상 사랑에 목맬 필요가 없었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긍정하고 나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이러한 사실적인 자기 확인이 와닿자, 상담전문가로 내 인생을 시금석 삼아 훈련하고 공부해오면서 내가 아는 것과 사는 것을 일치시키고자 한 노력이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내 편은 나고, 나는 내 편이구나. 나를 안다는 것, 나를 수용한다는 것,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멋진 나만 꿈꾸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구나. 때로는 내가 최악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때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와중에서도 버티고 일어선, 의미를 일궈내기 위해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 눈물과 진흙으로 범벅이 된 나 자신을 껴안는 것이구나. 그런 나를 비로소 안아주었을 때, 사랑하기를 사랑받기를 두려워하지 않겠구나.


오늘 <The Whale>이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의 감동을 위해 많은 것을 노출할 수는 없지만, 이 영화의 메시지를 두괄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The very fucking honest essay on yourself, is what matters. The essay is you." 과거 매우 작품성은 높았으나 흥행해 실패해 언급하기 까다로웠던 <페니 드레드풀>이란 영국 호러드라마 시리즈가 있다. 그 작품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자기 자신의 괴물같은 본성을 서양 오컬트에 흔히 등장하는 괴물들로 외현화하고, 자기 자신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과 또 서로의 그런 모습을 받아들이며 진실한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공포를 호러와 드라마로 표현했다고 나는 해석한다. (시간이 된다면 꼭 보시라! 강추드린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 <The Whale>의 관람 포인트 중 하나는 바로 으레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속 감춰진 혐오스러운 자기 자신과 타자의 모습이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나,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당신. 그렇게 나로부터도 타인으로부터도 단절된 채 '나에게도 너에게도 나는 혐오스러운 존재가 아닌가요?'라고 이 영화는 질문한다. 하지만 극의 주인공 찰리는 극의 주인공이면서도 가장 혐오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 혹은 외형을 가진채 이렇게 반문한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어쩌면 최악일 수도 있는 나와 당신이겠죠. 흔히들 우리를 그렇게 표현할지 몰라요. 나를 그리고 너를 도저히 사랑할 수 없다고요. 하지만 여기 당신이 남긴 한 에세이가 있어요. 어쩌면 잊고 있었던, 그렇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당신의 이야기가 있어요. 당신이 남긴 이 이야기를 읽어보았나요? 이 에세이는 내게 최고의 에세이였어요. 내가 숨을 헐떡이고, 내가 가장 비루하고 지저분한 모습으로 최악의 끝을 향해 나아갈 때,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그런 에세이요. 이 에세이는 당신이에요. 당신은 그런 존재에요."


나에 대해 쓴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흔히 'What an ungly truth!'라고 표현할 법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솔직한 글 속에서 나는 사랑에 대한 사실적 확신과 근거를 본다. 그 글은 우리의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최악이라고 혹평받는 나와 너를 다시 일어나 걷게 만드는 힘이다.


The essay on myself(or you), is the best story I've ever met in whol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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