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근 길이었다. 운전석에 앉아 빨간 신호등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고요하던 새벽 거리는 어느덧 배기음과 경적소리로 시끌벅적했고, 부산히 움직이는 무표정들에게는 이상하게도 생동감이 느껴졌다. 아침이 되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런 풍경이 보였다. 밝은 햇빛은 블라인드 사이를 뚫고 나와 아침잠을 깨우고, 나는 억지로 무거운 마음을 질질 끌고 나와 그 거리에 동참했다.
주변을 훑던 나의 눈은 잠시 하늘 위로 향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하루라는 단위,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뜨는 그 찰나의 시간에, 마치 어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지난 날들의 기억은 떠밀려가기를 강요받는다. 하지만 부끄러운 듯 하늘 뒤로 숨어서 하얀 얼굴을 비치고 있는 구체 하나만이 오늘 같은 어제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침에도 선명하게 떠 있는 달이 보였다.
"잘 잤어?" "밥은?" "있다가는 뭐해?" 별 다를 것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내는지 묻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하지만 해가 뜨면 일어나 다시 빛을 머금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우리 존재들처럼, 그런 질문들에는 애정어린 빛이 담겨있다. 아무렇지 않아보여도, 마음에 온기를 지피고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만드는 소소한 말들이다.
그러나 해가 지고, 아스팔트가 다시 차갑게 식어갈 때, '자?'하는 물음에 싸늘한 너의 무응답만이 밤을 채워간다. 그저 하루가 가듯 우리의 만남도 덧없이 반복될 일상 중 특별한 것 없는 단 하루일 뿐이었을까. 내 몸을 따스히 두르던 햇빛의 온도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만남의 마지막 의미를 좇아 스스로 불사르던 노력은 노을빛처럼 사그라들고, 직접 내리쬘 수는 없지만 오로지 그 아름다운 기억만이 저 달빛에 담겨 구슬프게 어두운 밤 하늘을 가로지른다.
그렇게 너는 아침처럼 다가와, 낮 동안 나를 비추었고, 어두운 밤 동안 조용히 그리워하는 존재가 되었다. 다시 하루가 저물고 하루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우리의 만남은 반복되는 일상에 의해 잊혀질 뿐일까. 깊은 밤을 보낸 후, 너는 아침에 뜬 달처럼 얼굴을 내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