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도 참 재밌다. 정신 혹은 마음에는 커다란 댐이 있어서 거침없이 물 분자를 흩날리는 자연 그대로의 폭포수를 기대하기 힘들다. 혹시라도 범람해버리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해하면서 끊임없이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거대한 콘크리트가 인위적으로 서있을 뿐이다. 아직 벗지 않은 외출복, 엉성하게 발 끝에 끼어있는 양말, 무선 이어폰 사이로 흘러나오는 재즈, 그리고 약간의 취기는 그 댐에 공급되는 전력을 차단한다.
힙지로 힙지로 하는 골목을 들어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밤거리 혹은 번화가 하면 이태원이나 강남역, 그리고 압구정로데오가 익숙한 나다. 인스타에서나 봤던 남루하고 후미진 골목에는 네온 사인들이 즐비했다. 그 사이로 선선한 날씨와 함께 내 또래 남녀들이 뒤섞여 페로몬에 절여진 싱그러움 같은 것을 뿜어내고 있었다. 희뿌연 담배 연기와 사방을 분주하게 훑는 굶주린 눈동자, 촌스러움을 멋스러움으로 탈바꿈한 술집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흥겨움을 돋웠다.
나도 그 내음에 홀린 듯 한 와인 가게로 들어섰다. 본래 드라이하고 바디감 있는 레드 와인을 선호한다. 하지만 올해 초 포르투갈 여행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달달한 포트 와인이 사고 싶어졌다. 가게 뒤쪽 모퉁이로 걸어가니 포르투갈 국기가 그려진 진열대가 보였다. 잘은 모르지만 초콜릿에 먹으면 가장 맛있다고 하는 포트 와인이랬다. 집에 오는 길에 초콜릿 맛 마카롱도 샀다. 몇 주째 스트레스로 탈이 나서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려야 했지만 뭐 상관없었다.
이런 거리, 이런 흥취에 나를 내맡기고 싶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연인과 하나뿐인 순간을 함께하고 있지만, 밤거리 씬에서 겉보기에 그들의 사랑은 그저 유흥을 위한 장식일 뿐이다. 그래, 그동안 성숙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너무 사로잡았는지도 모르겠다. 성장이나 성숙, 의젓함, 사려 깊음 따위의 말들에 우리는 너무 목맨다. 얼마나 훌륭한 마음가짐을 가졌든, 얼마나 대단한 노력을 하고 있든, 그저 이 을지로 모퉁이에 서서 술 취한 청춘남녀 사이로 밤 시간을 때우는 자체만으로, '머저리'들이라고 그들을 평가질하는 비방처럼 나도 취급받기를 바랐다.
내가 원한 건 '너를 이해해.' 이 따위의 말이 아니었다. 이해하면 좋지. 하지만 가끔은 아주 권위적이고 아주 이기적으로 보일지라도 '그냥 내 기분이 이러니까 나 내키는 대로 내 옆에 있어줘.'라는 말을 하고 싶을지도. 이제 굳이 시키지 않았는데도 나서서 너의 모든 아픔을 끌어안으려는 부담스러운 노력을 제쳐두고, 나도 내 마음대로 나 하고 싶은 대로 굴면서 '왜 그것도 몰라줘?'라고 싸가지 없이 말하고 싶은지도. 술 취한 그들을 토닥이며 '괜찮아, 내가 있잖아.' 이야기하기보다는, 세상 가장 추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흐트러진다고 해도 나를 토닥이며 부축하는 어느 존재를 느끼기를 바라는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