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다. 아침을 맞이하듯 자정을 시작한 게 도대체 며칠째일까. 지독한 우울증과 수면장애. 이제는 내 친구 같다. 질식할 것 같은 이 느낌. 텅 빈 허공을 더듬거리는 두 눈. 날 선 기억들이 춤추고 있는 무감각의 축제. 핏속까지 검게 물드는 기분. 빛깔을 띤 모든 것들이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빨려 들어간다.
'그래도 탓할 대상이 있었네요.' 저번 시간 교수님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그래 난 신을 탓했지. 그가 지독히도 미웠다. 시편을 읽으며 다윗처럼 절규하며 탄원해보기도 했고, 가슴을 뻑뻑 치면서 울며 기도하기도 했다. 그래, 그때는 그렇게 절망을 표출하기라도 했지. 지금은 눈물도 잘 나오지 않는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힘들었을까. 언제부터 삶을 체념했을까. 나는 몰랐는데 아빠가 그랬다. '00 네가 어렸을 때 꿈이 없었지.' 그랬나? 생각해보면 유년기에 '넌 뭐가 되고 싶니?' 누군가 물으면 '소방관, 경찰관'하는 식으로 뻔하고 잡다한 직업을 얘기했었던 것 같은데, 정말 그 이후에는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심이 생겼다. 처음으로 인생에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선교사가 되고 싶어요.' 하나님을 위해 살고 죽는 것. 그게 내 꿈이었다.
지레짐작할 뿐이지만 이른 시점부터 나의 생기를 앗아간 연유들이 있을 것이다. 어릴 적 부모님의 불화와 잦은 싸움, 부모가 처음이라 나에게 저질렀던 무수한 실수들, 서울로 전학 오면서 겪었던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 중학교 때부터 성인기 초기까지 지독하게 이어오던 짝사랑들의 처절한 실패, 게임 중독과 학업 실패로 낙인찍히고 문제아 취급을 받던 시절들, 유난히 감성적이고 예민했던 나. 이런 일들을 떠올리면 실패로 점철된 인생 같아서 싫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닌데. 또 어느 정도는 누구나 겪었던 아픔 들일 텐데. 나는 왜 이렇게 아플까, 왜 이렇게 자주 아플까, 살기 싫을 정도로.
울면서 신은 없다고 부르짖던 스물넷의 여름, 당시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쏟아부어도 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를 내게서 앗아가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 이전까지 떠나간 모든 사람은 그래도 괜찮으니 이 사람만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빌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떠났다. 그녀를 잃자 나는 더는 신의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믿던 모든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구원은 예수 한 분을 통해서라고 하던가. 아니, 내 구원은 그녀였다. 왜 그토록 갈망했는지, 왜 그토록 간절하게 사랑했는지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내 삶의 이유였다. 그때 난 생각했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유일한 것은 사랑임을. 나는 그저 사랑하고 사랑받고 그 사랑을 지키기 원했을 뿐인데. 사랑을 통용하지 못하는 믿음의 논리는 내게 부정한 것이 되었다. 이렇게 고통스럽다면 이게 현실이라면 나를 사랑하는 신은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 후로 3년간 망령을 따르듯 그녀의 잔상을 쫓아 방황했다. 힘겹게 마음을 열고 새로운 사람과 행복한 연애를 시작했으나 1주년을 앞둔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나 권태기야.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아.' 부대 훈련 중인 나에게 그녀가 고한 이별이었다. 권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더욱 애써 노력하던 나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괴로워하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이 생겼어. 내가 그 사람이랑 끝까지 갔는데도 괜찮다는 거야?' 약 한 달을 미친 사람처럼 군대 자취방에 갇혀 울었다.
아픔을 추스르고 새로운 사람과 다시 힘겹게 마음을 열고 연애를 시작했다. 8개월이 흐르고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던 어느 날, 그녀가 느닷없는 헤어짐을 고했다. '오빠가 전라도 태생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빠가 편견을 가지고 비하하는 걸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 또 친구들도 오빠가 석사 박사 하는 것에 대해서 안 좋게 말하고는 하는데 내 마음이 식은 것 같아.' 또다시 몇주를 시체처럼 누워 지냈다. 이제는 시원하게 울지도 못했다.
다시 아픔을 추스르고 새롭게 알게 된 그녀와 행복한 두 달을 보냈다. 크리스마스 저녁,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도중 그녀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나 이혼했었어. 애도 있고. 그동안 숨겨서 미안해. 지금 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도 아무런 말하지 않을게.'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지만 그녀에게 상처를 주기 싫었다. 그녀를 사랑했고 내 모든 마음을 다해 그녀의 삶을 포용하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1년 넘게 만났다. 하지만 무수한 노력에도 끝내 아이와 나 사이에서 삶의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갈등하던 그녀였다. 나 역시 봉합할 수 없는 간극을 느끼고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정말 사랑하는, 운명이라고 느끼는 여자 친구를 만났다. 공통점도 많았고 사소한 버릇과 행동, 습관 모두 사랑스러웠다. 처음으로 실제적으로 결혼을 준비했고, 여자 친구의 부모님과 친척들도 뵀다. 나의 본업 외에 할애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그녀를 위해 헌신했고, 그녀가 아플 때 보듬고 그녀가 기뻐할 때 함께 웃어주려고 했다. 그 사람이 내 우주, 내 세상의 중심이었다. 내 모든 삶을 통틀어 이렇게 행복하고 낙관적인 시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삶이 비극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나의 과거를 덮고 나의 현재를 채우며 나의 미래를 안내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갑자기 이별을 고했다. 단 한 주 전까지만 해도 내가 보고 싶다며 서울로 올라오던 그녀. 태어나서 처음으로 쓴 편지를 나에게 건네주고, 가족들에게도 못하던 '사랑해.'를 이야기해주던 그녀가 이별을 원하고 있었다. 회사에 쉴 새 없이 몰아닥치는 야근과 자신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책임으로 인해 자신이 연애를 할 여유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혹시 다른 사람이 생긴 것이냐고 울먹이면서 얘기하는 나에게 '그냥 바빠지면서 마음이 안 가는 것 같아. 그게 다야.'라고 말했다. 함께 극복할 수 없겠냐는 나의 간절한 음성에 그녀가 답했다. '도저히 그럴 여력이 없어. 오빠가 이렇게 아파하는데 사실 나는 그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어.'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녀를 향한 나의 모든 기대와 사랑, 그리고 모든 소중한 추억이 지금으로서는 짐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아무런 이별의 전조도, 갈등도 없었다. 서로가 마냥 행복했던 시간을 걷다가 우리는 미처 보지 못한 절벽으로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 탓이 아니었다. 침묵이 길어진 그녀에게 며칠 뒤 다시 물었다. '나랑 헤어지고 싶은 거야?' '말 못 하겠어. 그런 것 같아.' '그래 널 사랑하니까 헤어질게.'
신? 신은 없다. 신은 없기에 그를 탓하지 않는다. 기적을 바라며 울지도 않는다. 그녀를 탓하지도 않는다. 삶은 고통이며 비극이다. 나는 죽지 못해 살지만, 의미 있는 죽음을 위해 산다.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이 사랑을 느끼면서 덜 아파할 수 있도록, 나는 죽음을 미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