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물 같고 나는 나무 같아."
음양오행 사주풀이에 빗대어 서로의 성격을 논하면서 우리가 하던 이야기가 있다. 물과 나무.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자유롭고 틀에 박혀있기를 싫어하며 가파른 계곡부터 드넓은 바다까지 유랑하는 너의 영혼은 마치 물과 같았다. 생명의 기원이 깃든 광활한 보고이며 드넓은 대지를 적시는 생수. 담을 수는 있지만 결코 정형화된 모양은 없으며, 가만히 고이면 썩고 마는 그 성질은 너의 운명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랬다. 너를 잘 알지 못한다고 확언할 수 있는 우리의 첫 만남부터 너는 물처럼 나를 적시고 파고들었다.
반면, 뿌리를 박고 우뚝 솟아있는, 긴 세월 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잡고 서서 지나가는 이에게 그늘을 제공하거나 설레는 꽃잎을 흩날리고 먹음직스러운 과실을 떨구는 나는 마치 나무와 같았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내리쬐고 거친 비바람이 불어도, 그 모든 것을 양분 삼아 굵직하게 버티고 서서 가지를 뻗는 생명. 음성이나 울음소리는 없으나 나뭇잎 스치는 소리로 섬세히 귓가를 채우는 그 평온함에 아마 너는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나 보다.
"한 3분만 멍 때리자."
갑작스럽게 떠난 여행, 얇고 잔잔하지만 장엄하게 파도 결을 내던 인천 서해바다를 보며 네가 한 말이었다. 아이들이 내던지는 새우깡을 따라 가득 모여드는 갈매기 떼와 좌우 지평선을 따라 만(灣)을 이루며 봉곳이 솟아있는 육지, 흐릿하지만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빛 하늘과 차디찬 4월의 마지막 날 바람, 그리고 고된 작업을 끝내고 정박하고 있는 어선이 우리의 시선을 가득 채웠다.
'그래 너는 바다구나.'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문득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물의 양태는 지형에 따라 참 다양하다. 물은 호수일 때가 있고 시냇물일 때가 있으며, 강가나 지하수일 때도 있다. 그런데 유독 그중에서도 너는 바다 같았다. 종잡을 수 없이 넓고 또 깊다. 사람들의 웃음기 가득한 휴일을 채우는 해변에서 그 낙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심해 같이 깊은 어둠을 간직하기도, 배를 뒤집는 거친 폭풍우를 동반하기도 한다. 무한한 가능성의 소재로서 꿈을 가지고 탐험을 나서는 이들의 고향인 너는 그렇게 작은 물결을 이면서 너의 존재를 말하고 있었다.
나무는 줄기에 잔뜩 물을 머금고 대지에 그 초록빛 위로를 채운다. 하지만 너는 바다. 아무리 우직하고 굵은 나무라고 하더라도 그 장대한 꿈을 다 머금을 수 없다. 애초에 너의 극히 일부만을 담아 내 몸속에 놓인 도관을 따라 흐르는 수액처럼 둘 수가 있을까. 그렇게 사시사철 변치 않는 정적인 힘이 되어주기를 바랄 수 있을까.
너는 바다. 나는 나무. 세상의 끝이 놓여있다는 서쪽 저 너머로 모험을 시작하기 위해, 나 베이고 꺾이기를 두려워하지 않겠다. 오랜 세월 굵고 단단하게 채워왔던 기둥과 가지로 대양을 건너기에 적합한 나무배를 만들어본다. 누군가의 뿌리 속으로 스며들 수 없는 크기와 본질이 네게 있다면 너의 위를 둥둥 떠다니며 내가 모험을 시작하겠다. 지금 고된 노역을 뒤로하고 정박하는 저 어선처럼, 내 매 순간 너와 함께하는 시간을 따라 항해하고 또 잠시 쉬겠다. 혹 내가 가늠하지 못한 파도가 몰아쳐 난파당하더라도 나 후회 없이 용기 내어 이 모험을 나서겠다.
너는 바다. 나는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