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모양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고슴도치, 선인장을 닮은 뾰족한 공 모양으로 상상했다. 왜냐하면 불행은 끈질기다. 그래서 가시가 많아 마음에 박히기 쉽고 손으로 덥석 잡아떼어내기는 어려운 모양일 거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쉽게 대처하지 못하는 건 무방비상태에서 공을 맞기 때문 아닐까. 이런 갑작스러운 불행이 싫다. 따끔한 감촉에 마음부터 놀란다. 준비도 하지 못해서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하게 된다. 그리고 이 불청객은 내 마음 이곳저곳을 굴러다니며 계획을 헤집는다. 우산 없이 맞이하는 소나기가 꼭 그렇다. 열아홉 9월, 나에게 그런 날이 있었다.
열아홉, 내 인생은 무지개는 없어도 대체로 맑았다. 그래서일까. 걱정보다 기대가 쉬웠다. 햇빛을 기대하는 게 우산을 챙기는 것보다 편했다. 안 좋은 일을 걱정하며 찡그리고 살기보다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며 기대하는 게 내 일상이었다. 앞 날을 알 수 없는 지구에 사는 주민으로서 내가 사는 방식이었다. 무엇보다 화창한 날 우산만큼 거추장스럽고 번거로운 물건도 없다. 분명 화창한 날은 계속될 거라고 믿었다. 내일 비 올지 모른다며 항상 우산을 들고 다닐 순 없는 일이었다.
소나기를 흠뻑 맞은 날에도 역시 우산은 없었다. "백혈병이 의심됩니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 이후 이어진 분위기가 기억난다. 결연한 의사 선생님, 당황한 보호자와 놀란 고등학생. 딱딱한 얼굴들만이 진료실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음을 살피기도 전, 피부부터 요란하게 소름이 들썩였다. 마음 한편에는 "백혈병이 의심됩니다."라는 말을 이해하려는 시도로 분주했다.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은 벌써부터 바빴다. 10대에 암 진단을 염두에 두며 사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이런 낯선 불행이 선명해져 가는 과정이 더더욱 낯설었다. 진단받은 날, 나는 상태가 좋지 못해 바로 입원을 해야 했다. 여름의 뜨거움이 옅게 남은 가을, 백혈병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나에게 때 아닌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어도 비는 내린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걷게 됐다.
빗물에 젖은 내가 무거웠다. 거울로 표정을 살핀다. 머리부터 얼굴을 타고 흐르는 빗물에 시야가 흐리다. 금세 흐르는 물로 바닥이 흥건하다. 하지만 먹구름이 나를 쫓아다니듯 여전히 빗방울이 얼굴을 타고 흐른다. 내 얼굴을 볼 수 없는 밤이다. 도수가 맞지 않은 안경을 쓴 듯, 아무리 거울을 봐도 그저 사람 형채 하나만 덩그러니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얼굴을 볼 수 없는 세계에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치료는 멈출 수 없고 시간은 계속 흐른다. 고단한 투병생활에 내 마음을 보살필 여유는 없었다. 아프다고 멈출 수 없었고 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길어지는 치료만큼 따라잡아야 하는 일상이 더 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게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평화롭진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치료를 마냥 미워할 순 없었다. 여유 없는 현실이 가혹해도 마지막 치료도 쉬지 않고 나에게 다가온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도 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 짧은 해방감 이후 당혹스러움이 몰려왔다. 열아홉에 모든 게 멈춘 줄 알았지만 시간은 흘러가있었다. 잔뜩 밀린 숙제가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고장 난 마음으로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긴 어려웠다. 상처 입은 마음보다 멀어진 일상이 더 다급해 보였다. 세상에 적응하는 게 겁이 났고 내 상처에 무감각했다. 여전히 내 얼굴을 볼 수 없는 세계에 있는 기분이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필요한 건 생존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죽음 이전에 탄생했어야 한다. 자아 없이 살아가는 존재는 생명력이 없다. 나는 아직 스스로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두드리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곯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온 힘으로 두드린다. 내 표정 조차 볼 수 없는 세계를 부수고 나갈 것이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환하게 웃어보이며 그렇게 태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