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대딩
나는 한 회사에서 만으로 5년 7개월을 다녔다. 정확히는 4년 6개월 근무 후 퇴사했고 재입사하여 다시 1년 1개월이 지났다.
퇴사를 결심하게 되는 계기와 재입사를 하는 이유는 모두 다 다른 사연이 있겠지만, 올해로 28살이 된 나의 직장생활 이야기는 조금 특별할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써 공유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입사
내 인생 첫 번째 입사일은 2013년 11월 4일이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 2학기였던 나는 경기 소재의 특성화고등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에 비해 조금 늦게 취업에 성공한 케이스였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처럼 아주 앳된 얼굴에 어색한 정장 차림으로 면접을 보았고, 회사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고졸 공채에서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통보를 받았다. 당시 특성화고 취업이 붐이었던 상황이라 규모가 큰 고졸 공채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 포함 총 일곱 명이 동기로 입사하게 되었는데, 첫 환영회식 때 사장님께서 따라주신 맥주를 미성년자라서 못 마셨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해가 바뀌고 3개월이 조금 지난 시점에 공가를 쓰고 졸업식에 간 뒤부터 나는 진정한 직장인이 될 수 있었다.
연차가 조금 쌓였을 때부터는 회사에 고졸 후배들도 제법 생겼지만 내가 갓 입사했을 당시는 고졸 채용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자리 잡혀있지 않은 상황이었고, 동료분들 또한 너무 어린 나와 내 동기들을 신기해하고 조금은 어려워도 하셨던 것 같다.
아무튼 학교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던 진짜 취업과 직장생활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기본예절부터 메일, 메신저, 전화받는 것까지 막내 직원으로서 항상 바짝 군기를 유지하곤 했다. 지금은 회사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는데 그 당시에는 다른 여타 회사들처럼 많이 보수적인 편이었던 것 같다.
내가 했던 업무는 콘텐츠그룹 내에 있는 한 파트에서 여러 콘텐츠를 제작하고 운영하는 일이었다. 포토샵과 드림위버를 사용하여 작업을 하거나 주로 단순 반복되는 간단한 업무를 입사 초반에는 계속했던 것 같다. 대학생 인턴사원과 주부 재택사원 분들도 파트에 많이 계셔서 중간에서 이런저런 총무일도 많이 처리했었다.
고졸의 현실
입사 후 한 일 년정도 지났을 무렵부터 나는 조금씩 욕심이 생겼던 것 같다. 퇴근 시간이 지나고 야근을 하면서까지 콘텐츠 구성을 리뉴얼해보겠다고 혼자 열심히 고군분투도 했다. 처음으로 내가 상사에게 대강 구색만 갖춘 서툰 PPT 자료를 보고 드렸을 때 파트장님께서 긍정적으로 봐주셨는지 피드백도 주시고 얼떨결에 회의실에서 팀장님, 그룹장님께도 보여드리게 되었다. 다만 내가 만든 그 결과물을 다른 사람이 대신 발표를 했다.
그때 처음으로 분했던 것 같다. 학벌이 장애물이 되어 직접적으로 나에게 큰 상실감을 주는 게 어떤 기분인 건지..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크게 느낄 수 있었고 대학 졸업장은 우리 사회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또 한 번은 대졸 신입사원들이 연수원에 가서 신규 콘텐츠 기획 PT발표를 하러 갔던 적이 있었는데, 면담을 할 때 요청할 사항이 없냐고 물으셨을 때 나와 내 동기들도 그런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물론 내 동기들은 싫었을 수도 있다) 다행히 그 요청은 받아들여져서 2주간을 PPT 만들고 발표 연습하는데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난다.
첫 번째 발표는 비록 내가 하지 못했지만, 두 번째 발표의 기회는 내 손으로 따내었고, 다른 팀 동료분한테 다시 보인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었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큰 욕심은 없었지만 이렇게 내 위치에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계속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퇴사
입사 후 2년이 지났을 즈음부터는 조직 이동도 있고 업무도 중간중간 조금씩 바뀌곤 했는데, 결론적으로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던 것 같다. 이때부터는 욕심보다는 회사 밖에서의 내 삶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졌던 것 같다. 일 년에 한두 번 해외여행도 가고 다른 친구들에 비해 돈 씀씀이도 좀 더 늘리고.. 비교적 일찍 취업해서 누릴 수 있는 장점들을 최대한 이용했다.
그러다 경력이 만 3년이 채워졌을 때 동기들과 다 같이 <특성화고 재직자 전형> 수시 원서를 지원하자고 말이 나왔다. 사실 입사했을 때부터 이 전형을 통해 나중에 대학 진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진짜로 지원할 때가 되니 상당히 기분이 이상했다. 재직자 전형은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만 3년 이상의 경력이 있는 사람만 지원할 수 있는 특별전형인데, 이 내용과 학교생활 이야기는 추후에 다른 에피소드로 다뤄볼 생각이다.
아무튼 나는 2016년도 가을에 수시를 접수하고 그다음 해 17학번으로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물론 재직자 전형 학과였기 때문에 퇴근 후에 야간으로 수업을 들었고, 우리끼리의 은어로 직장인과 대학생을 합친 '직대딩'이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일반적인 대학생과 대학생활이라고 하면 생기 있고 풋풋하고, 즐거운 술자리가 생각나지만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직대딩이었기 때문에 사뭇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나는 회사에서 학교까지 딱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수업이 시작되는 오후 7시까지 늦지 않게 가기 위해서는 상당히 촉박할 수밖에 없었다. 기차를 타고 다른 지역에서 오는 학우들 또한 여럿 있었다.
당시 경기권에서 가족들이랑 살던 나는 집에서 회사까지 한 시간 반, 회사에서 학교까지 한 시간, 학교에서 집까지 1시간 반으로 일명 버뮤다 삼각지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비하인드를 설명하곤 했다. 일주일에 4일 이상을 학교에 갔는데, 오전 6시에 일어나 출근 후 오후 6시에 퇴근하고 등교하면 3시간 수업을 듣고 집에 도착하면 항상 자정이 되는 게 루틴이었다.
토요일은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학교에서 계속 수업을 듣고 회사 다니느라 팀플과 과제는 일요일에 몰아서 했다. 다행히 회사에서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회식은 주로 점심에 하고 수업이 있는 날은 6시에 칼퇴근하면서 1학년을 무사히 넘겼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 일상을 4년 동안 유지하기 것은 너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지속적으로 들었고 2학년 1학기에 퇴사를 했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