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한국 SF 소설들이 주목을 받았다. 듣기론 팔기도 많이 팔고 해외에 판권도 수출했다고 한다. SF 소설을 많이 읽어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관심이 가는 분야였기에 이런 소식들이 반갑게 들리기도 했다. 그 실체를 마주하기 전까진 말이다
김초엽은 한국 SF 작가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들 중 한 명이다. 작가의 첫 소설집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은 출간 이후 큰 관심을 받아 20만 부가 팔리는 기염을 토해냈다. 무려 SF라는 장르로 말이다! 한국이 SF 불모지라는 소리를 듣는 형편이라는 걸 생각했을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대체 무엇이길래 그럴까?
나는 도서관에서 대출예약이 꽉 차 있는 소설집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대신,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 파견자들 」을 빌리기로 했다. 4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두께가 나를 설레게 했다.
그리곤 실망했다. 이게… 한국 최고의 SF 작가 중 한 명의 소설이라고?
우선 인물들이 주인공인 태린과 그의 스승 이네프를 제외하면 지나칠 정도로 평면적이다. 작중에는 ‘ 범람체 ’라는 생명체가 등장하는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너무 간단하게도 범람체에 적대적인 유형, 호의적인 유형으로 나뉜다. 대체로 높으신 분들이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 나름 범람체에 대해 심도 있게 알아보거나 고민해 보는 모습 없이, 그저 범람체를 적대하는 데 급급한 모습만 보여준다. 그에 비해 호의적인 유형은 수가 적은데, 주로 주인공과 그의 친구 선오, 그리고 범람체에 감염된 ‘ 늪인 ’ 들 정도가 전부다. 이들은 적대적인 인물들에 비하면 나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역시 깊이 있지 못하고 겉만 맴돌다 끝나버린다.
주인공 태린과 이네프는 서로 사랑에 빠진 관계인데, 그 묘사가 상당히 빈약하다. 소설 속에 나온 내용을 보면 그냥 대화 몇 번 해본 게 전부인데, 서로에 대한 감정은 상당히 과장된 것처럼 보인다. 둘 사이가 가까워지게 되는 계기라고 할 만한 사건을 집어넣었다면 좋았을 텐데 많이 아쉽다. ( 솔직히 이 러브라인은 없어도 무방하다. 서로에게 감정이 있다는 언급이 없었다면, 그냥 좀 각별한 사제지간에 불과해 보인다 )
전개 역시 어딘가 엉성한데 1부 마지막에 주인공의 몸을 빼앗고 돌발행동을 벌이는 범람체 ‘ 쏠 ’의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전까지 딱히 눈에 띄는 복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전개를 위해 억지로 집어넣은 장면처럼 느껴졌다. 또한 3부에 들어가면 문제들이 이곳저곳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가령 3부에 등장하는 출입금지구역과 비밀 연구소는 분명 출입금지구역인데도 불구하고 그 앞을 지키는 경비도 없고 보안 시스템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주인공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무사히 연구소로 들어가 친구 선오와 사람들을 구한다. 이네프는 신출귀몰하듯 홀로 등장한다. 주인공이 이네프와 대치하는 장면은 너무 진부하다. 무려 비밀연구소가 폭발하고 안에 있던 감염체들이 탈출했는데도 이 사실은 시민들은 어떤 갈등과 대립도 없이 단결해 정부에 항의한다.
이 책의 주제의식은 결국 ‘ 나란 존재는 나의 자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의 연결과 소통으로 존재한다. ’인 것 같다. 작중에서 범람체들이 서로 각자의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의 전체로 기능하는 데, 솔직히 이에 대한 묘사가 혼란스럽고 어수선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이건 작가의 표현실력이 부족한 듯싶다.
전체적으로 묘사가 빈약하고, 인물을 단순하며, 전개는 허술하고 뻔하며, 주제의식은 얕다고 느껴진다. 비록 이 소설이 한국 SF를 대표하는 작품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름 고평가를 받는 작가의 작품이 이 정도 수준이라는 것이 상당히 실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