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도서관에서 표지와 판형이 맘에 들어서 빌린 책이다. 그때로 돌아가면 그냥 얌전히 다시 서가에 꽂아 넣었을 텐데… 참 아쉽다.
네 가지의 연작소설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은 제대로 완성된 느낌이 아니다. 습작느낌이 풀풀 난다고 할까.
우선 등장인물들부터 살펴보면, 화자인 인동은 아무 특징이 없다. 정말 아무 특징이 없다.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뒤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일부러 수동적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단순히 수동적인 것과, 아무런 특징이 없는 건 분명 다르다. 인물이 수동적이라고 해도 그 인물이 수동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나야 하는데도 이 소설에선 그 이유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 인동이 딱 한 번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는 데, 이건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자. )
이 연작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귀자라고 하는 귀신이다. 길에서 남자친구와 걷던 도중 시비가 걸린 아저씨에게 죽임을 당해 냉장고에 갇혀 귀신이 된 인물이다. 이 인물 역시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를 광적으로 좋아한다는 것 말곤 딱히 다른 특징은 없다. 작품의 두 메인 인물들이 이토록 무미건조하니, 인물에게 애정이 생기지도, 몰입이 되지도 않았다.
첫 번째 소설 < 냉장고와 넷플릭스 >는 별 다른 사건 없이 그냥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인물들이 전혀 매력이 없는지라 이들이 나와서 넷플릭스에 대해 마구 떠들어 대는 모습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만 할 뿐이다.
두 번째 소설 < 에어 강아지의 보호자는 >에서 인동은 사라진 에어 강아지를 찾다가 실종된 여자친구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는데, 갈등의 해결이 너무 쉽고 단순하게 이루어진 탓에 흥미를 느끼기도 전에 급하게 끝나버렸다. ( 사실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이 전부 이런 느낌이기는 했다. )
세 번째 소설 < 저주받은 리얼돌 >에서는 리얼돌 체험방을 처분하는데 도와달라는 건물주의 부탁을 받는데, 솔직히 이 소설은 소설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관심 없고 작가 개인의 의견을 설파하기 위해 쓴 작품처럼 느껴진다. 작품에 작가 개인의 의견을 담는 건 자유지만, 그래도 명색의 소설가라면 좀 더 세련되고 그럴듯하게 담아내야 하지 않을까? 젠체한 척하며 주절주절 떠들어 대는 것보단 말이다.
네 번째 소설 < 유치원을 나온 사나이 >는 인동은 유치원 아이들의 그림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인물에 대해 알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 소설은 그래도 앞의 소설들에 비하면 나름 분량도 길고 자세하게 쓰여 있는데, 맘에 안 드는 점은 화자 인동의 행동이다. 모든 사건에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던 인동이 갑자기 여기서 ‘ 아이들은 지켜야 한다. ’는 신념으로 불길이 휩쓰는 유치원으로 뛰어드는 데, 정말 뜬금없는 행동이었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최소한 흘러가는 말이라도 언급을 해주던가, 갑자기 태도가 180도 변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응원하고 싶어지는 마음보단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마지막에 뜬금없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자고 고백하는 귀자는 덤이다.
만약 이 소설들이 습작이라는 분류 하에 들어갔다면 이렇게까지 불만을 표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200페이지가 안 되는 이 책의 가격은 무려 14,800원이다. 만약 돈 주고 사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냥 조용히 서가에 책을 집어넣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