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영 작가의 「 종의 기원담 」을 읽었다. 인류가 멸종하고 난 뒤 지구를 지배하게 된 로봇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연작소설은, 기존 SF 마니아들은 뻔하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나처럼 이제 막 SF에 발을 들인 독자들에겐 흥미롭다고 여길 수 있는 설정을 다루고 있다.
1부는 로봇의 기원에 궁금증을 가지는 주인공이 유기물이 생명이라고 주장하는 ' 유기생물학 ' 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고, 2부는 그 이후 인간을 창조하게 된 로봇들의 모습을, 3부는 2부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선 1부터 얘기하자면 설정과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롭고 재미었다. 인간과는 다른 생태를 지녔지만 사고방식은 인간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상당히 풍자적으로 느껴지고, 작중에서 유기물이란 무엇인지, 이들을 키우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지 로봇들이 고민하고 실험하는 모습은 웃기기도 하고, 과정이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된 덕분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2부는 1부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마침내 인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로봇들은 인간을 경배하며 그들을 위해 목숨도 바칠 기세로 충성하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 케이는 사실 인간을 죽이기 위해 설계된 로봇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다른 로봇들은 물론, 심지어 인간을 사랑하는 또다른 자신의 의지에 반해 인간들을 죽이고 인간들을 길러낸 연구소를 폐쇠시키게 된다.
개인적으로 2부는 1부의 사족이란 느낌이 든다. 1부 그 자체만으로 완결성이 갖춰져 있는데 굳이 거기에 이야기를 덧붙여 1부가 가진 매력과 신비감이 퇴색된 것만 같다. 그리고 주인공 케이가 살인기계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과정은 살짝 뜬금없고 복선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1부 보다는 긴장감 있고 속도감이 느껴지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3부 역시 앞선 이야기들의 이후를 다루고 있다. 유기생물을 제거하는 ' 환경청 '의 청장으로써 유기생물 제거에 앞장 서는 주인공 케이가 폐쇠된 구역에서 인간을 숭배하는 로봇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가는 인간들과 대면하게 되는 이야기다. 인간들은 로봇들과 공존하고자 하지만 케이는 인간의 존재 자체가 로봇에게 위협이라면 거부한다. 하지만 갑자기 끊어진 연결회로로 인해 인간에 대한 경애와 증오의 감정이 사라지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자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의 구역에서 살아가기로 합의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2부가 1부의 사족 느낌이 들었는데 3부는 2부의 사족이라는, 그것도 불필요한 사족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3부의 주제는 결국 ' 자유의지를 가진 로봇과 인간이 서로 공존 할 수 있는가? '인데, 이를 바탕으로 하는 전개와 결말의 설득력이 아주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아무리 로봇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지만
등장하는 인간들에 대한 묘사나 인간과 주인공 사이의 대화나 상호작용이 부족하다. 그리고 주인공의 몸속에 있는 수많은 연결회로 중 하나가 망가지면서 인간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갖추게 되는 장면은 너무 갑작스럽고 편의주의적인 전개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에는 인간무리의 대표자 중 한 명인 시아가 로봇과 인간이 존재하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하게 되는데, 로봇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주겠다는 생각처럼 보이지만 자신들의 생존이 급박한 상황에서 로봇에게 이토록 아량을 베푸는 이유가 소설 속에 잘 드러난 것 같지는 않아 아쉽다고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1부는 상당히 완성도 높은 SF 단편소설이었고, 2부는 단편보단 차라리 좀 더 살을 붙여 독자적인 설정과 이야기를 가진 장편으로 써냈다면 나름 괜찮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3부는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지 않는 이상 그냥 이 연작소설에서 빼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읽어본 한국 SF 소설들 중에서는 나름 매력있고 괜찮은 작품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