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일기

14. 나나

에밀 졸라의 「나나」를 읽고

by 띠띠리따띠뚜

에밀 졸라는 나폴레옹 3세가 통치하던 프랑스 제2제정기 시절부터 보불전쟁 이후 들어선 제3공화국 시기까지 활동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입니다. 낭만주의에 반대해 당시 유행하던 유전학에 바탕을 둔 자연주의 문학 이론을 주장하며 프랑스 문학계 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계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거장이며, 동시에 드레퓌스 사건 당시 공개적으로 프랑스 정부에 항의하는 공개서한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해 옥고를 치르고 영국으로 망명을 떠나기도 했던 행동하는 지식인이기도 했습니다.


루공-마카르 총서는 졸라의 문학세계를 집대성한 그의 대표 총서로, 루공-마카르 총서는 한 가문의 유전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가 인간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탐구하기 위해 쓰여진 작품들입니다. 1871년 발표된 「루공 가의 행운」를 시작으로 1893년 마지막으로 발표된 「파스칼 박사」까지, 5대에 걸친 루공-마카르 가문 사람들을 중심으로 총 2000명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당시 프랑스 사회의 세태와 혼란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번에 읽은 「나나」는 루공-마카르 총서의 아홉 번째 작품으로, 총서의 일곱 번째 작품 「목로주점」의 주인공 제르베즈의 딸 나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입니다. 「목로주점」에서 나나는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한 부모 곁을 떠나 매춘부가 되어 화려한 삶을 찾아나서는데요, 그런 나나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 바로 「나나」입니다.


소설은 오페라 <금발의 비너스>에서 비너스역으로 화려하게 데뷔하는 나나의 모습과, 그에 홀려 열광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외모와 육체를 가진 나나는 자신이 가진 무기를 동원해 상류층 남자들을 유혹하고 그들을 파멸로 몰아갑니다. 은행가 스타이너, 뮈파 백작, 위공 부인의 자식들인 조르주와 필리프까지, 그 외에도 수 많은 남자들이 가정을 버리고 재산을 탕진하며 나나에게 열렬한 구애를 보냅니다.

나나는 그런 남성들을 모욕하고 조롱하며 자신 또한 나락의 굴레로 떨어집니다. 결국 나나에 홀린 남자들은 자살, 파산, 이혼 등 삶이 완전히 망가져 버리고 나나 역시 먼저 죽은 아들을 따라 천연두에 걸려 스스로 찬미하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는 초라하게 죽고 맙니다.


알콜 중독자인 부모로부터 게으르고 방탕한 천성을 물려받은 나나는 소설 속에서 마치 사회를 오염시키는 바이러스처럼 묘사됩니다. 아마도 작가는 나나라는 인물을 통해 절대적인 유전적 영향에 지배받는 인간과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견해를 나타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나나는 악한 품성뿐만 아니라 순수하고 타인에게 깊은 연민을 품는 인간처럼 묘사되기도 합니다. 작중 자기보다 한참 어린 조르주와 소중한 친아들 루이에게 보여준 모성적인 모습, 자신을 구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별 볼일 없는 배우 퐁탕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바치는 모습, 뫼파 백작이 아내의 불륜으로 고뇌할 때 진지하게 조언해주는 모습 등, 순전히 악인이라고 볼 수 없는 선한 모습들 또한 보여줍니다.


나나가 작중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극의 원인일까요? 소설 속에서 나나 본인이 꼬집듯, 남자들의 몰락을 순전히 나나 탓으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자기 아내를 이용해 뚜쟁이 노릇을 하는 미뇽이나, 물려받은 재산을 방탕하게 탕진한 방되브르와 라 팔루아즈 같은 젊은이들, 허영심에 눈이 멀어 부인 있는 남편을 유혹하는 수 많은 여자들까지, 상류층 사람들의 방탕하고 부도덕한 모습들을 보자면 굳이 나나가 아니더라도 그들의 몰락은 이미 예견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에 비하면 오히려 나나는 자신의 방탕한 삶과 신실한 종교적 믿음 사이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는 안타까운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소설은 한 호텔방에서 쓸쓸히 죽은 나나의 시체와 프로이센과의 전쟁을 앞두고 연신 "베를린으로!"를 외치며 행진하는 성난 군중의 모습을 대비시키며 끝나는데, 이 장면은 자신의 무기인 미와 육체를 이용해 비참한 출신성분을 극복하고 사회를 망가뜨리길 시도했지만 끝내 사회의 모순 속에 무너져버린 나나의 삶을 비유적으로 그려낸 것처럼 보여집니다. 나나가 저승에서는 아들 루이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3. 촘스키,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