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란 엘리슨의 「제프티는 다섯 살」을 읽고
할란 엘리슨은 미국의 장르소설 작가입니다. 50년대 부터 미국 장르소설계에 나타난 새로운 흐름인 뉴웨이브 운동의 기수로 활약하며, SF, 판타지, 호러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통해 장르소설의 저변을 넓혀온 할란은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등 다양한 문학상을 휩쓸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편, 할란은 영화 「터미네이터」가 자신의 소설을 표절했다고 소송을 걸고, 한 시상식에서는 같은 SF 작가인 코니 윌리스의 가슴을 만지는 등 여러 기행을 펼쳐 악명을 떨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할란은 성평등과 흑인 민권 운동을 지지하고 평생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며 국제펜클럽으로부터 예술의 자유를 수호한 이들에게 수여하는 실버펜상을 받은 자유주의자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표제작 「제프티는 다섯 살」을 비롯해 할란 엘리슨이 쓴 여덞 편의 단편소설을 담은 소설집입니다. 시간을 통제하는 째깍맨과 이에 저항하는 할리퀸의 모습을 그린 「"회개하라, 할리퀸!" 째깍맨이 말했다.」, 다섯 살에서 시간이 멈춘 소년 제프티를 통해 지나간 시대에 대한 애정과 회환을 담은 「제프티는 다섯 살」, 기묘한 상점에서 지니가 깃든 요술 램프를 구입한 신혼부부의 좌충우돌을 다룬 「지니는 여자를 쫓지 않아」, 제3차 세계대전 이후 멸망한 세계를 살아가는 소년과 개의 우정을 그린 「소년과 개」, 세계에 남겨진 마지막 한 시간을 수호하는 노인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은 「잃어버린 시간을 지키는 기사」,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서 모티프를 따와 시간의 틈새에 갇혀버린 한 남자의 운명을 보여주는 「괘종소리 세기」, '배'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찾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인간 오퍼레이터」, 자신이 창조한 작은 인간 때문에 곤경에 처한 과학자의 고민을 그린 「쪼그만 사람이라니, 정말 재미있군요.」까지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문체는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순하고 투박한데, 흥미로운 설정의 이야기가 주는 재미때문인지 자꾸만 읽게 되는 마성이 담긴 소설집입니다. 전체적으로 짧으면서 유머러스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흘러넘치는 덕분에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네요. 독특한 소재와 재미있는 전개를 원하는 분들이라면 할란 엘리슨의 소설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