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일기

19. 우리 동네 아이들

나지브 마흐푸즈의 「우리 동네 아이들」를 읽고

by 띠띠리따띠뚜

2022년 8월 12일. 뉴욕주 셔터퀴에서 열린 문학 축제에서 행할 강연을 앞두고 있던 영국의 작가 살만 루슈디가 괴한에게 피습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루슈디가 1988년 출간한 작품 「악마의 시」가 이슬람을 모독했단 이유로 이란의 호메이니가 파트와를 선언한 이후, 루슈디는 언제나 살해 위협에 시달려 왔습니다. 그가 늘 염려했던 일이 마침내 벌어진 것인데, 이 사건 덕분에 전세계의 수많은 작가들과 독자들이 루슈디의 안위를 걱정 하며 표현의 자유를 소리 높여 옹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일이 이미 그 전에도 일어났던 적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할 작품의 작가 나지브 마흐푸즈의 사례입니다. 마흐푸즈 역시 그의 작품이 이슬람을 모독했단 이유로 이슬람 사회에 큰 공분을 샀고, 급기야 어느 율법학자가 파트와를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94년, 당시 여든 두살이었던 마흐푸즈는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피습을 받고 영구적인 신경 손상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마흐푸즈는 죽을 때까지 경호원들의 보호 속에 살아야만 했죠.


마흐푸즈를 위험하게 만든 그 작품이 바로 오늘 소개할 「우리 동네 아이들」입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1959년에 연재된 작품이지만 종교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작가의 모국 이집트에서 출판이 금지당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 후 작가가 피습되는 사건이 벌어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마침내 작품이 발표되고 난 뒤 47년이 지난 뒤인 2006년에야 비로소 이집트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들, 즉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알레고리 형식으로 풀어낸 한 편의 우화와 같은 소설입니다. 가령 황폐한 사막 한가운데에 마을을 세운 자발라위는 하느님을 상징하고, 소설의 첫장의 등장인물들인 아드함, 우마이마, 이드리스는 각각 아담과 이브, 사탄을 상징합니다. 어느날 대저택의 응접실로 자신의 아들들을 불러모은 자발라위는 막내 아들 아드함을 재산 관리인으로 임명합니다. 이에 장남 이드리스는 천한 출신의 아드함이 재산 관리인으로 임명된 것에 격렬히 항의하다 대저택에서 쫓겨납니다. 아드함은 아버지의 총애 아래 삶의 풍요를 만끽하며 행복한 나날들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드리스의 꾀와 아내 우마이마의 부추김에 넘어간 아드함은 자발라위가 작성한 유언과 유산 분배에 관한 열 가지 규칙이 적힌 책을 훔쳐보려다 자발라위에게 걸리게 되고, 그로 인해 우마이마와 함께 대저택에서 쫒겨나게 됩니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뱀으로 변신한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에덴 동산에서 쫒겨나게 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후로도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선지자들을 모티브로 삼은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질투심에 눈이 멀어 자신의 동생을 살해한 카인과 그의 동생 아벨을 떠올리게 하는 까드리와 후맘 형제, 부유한 관재인의 집에서 자랐지만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핍박받는 동포들을 이끈 선지자 모세를 연상케 하는 자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다 처형당한 예수를 모티브를 삼은 리파아, 천사 미카엘이 전한 하느님의 계시를 듣고 반란을 일으켜 새로운 지배자가 된 무함마드를 떠올리게 하는 까심까지, 모든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익숙한 아브라함 계통 종교 속 선지자들의 삶과 가르침을 떠올리게 합니다.


유일하게 마지막 장의 주인공 아라파는 어느 인물에게서도 모티브를 따오지 않았는데, 이는 아라파라는 인물이 과학자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아라파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마법을 연구하는 마법사입니다. 자발라위의 힘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대저택에 잡입한 아라파는 실수로 어느 늙은 하인을 죽이게 되고, 그로 인한 충격으로 자발라위가 사망하게 됩니다. 동네의 수장 두목까지 죽이게 된 그는 관재인에게 덜미가 잡히고, 폭탄을 만드는 조건으로 관재인의 심복이 되고 맙니다. 풍요롭지만 무위한 삶에 싫증을 느끼던 차에 대저택에서 마주친 흑인 하녀가 전한 자발라위의 유언에 감명을 받은 그는 동네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결국 실패해 살해당하고 맙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아라파가 남긴 연구노트를 찾은 친구 하다슈가 아라파의 연구를 이어감과 동시에 동네 사람들이 희망을 가짐으로서 마무리됩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깨달은 사실이, 서로 사이가 나쁜 세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전승들이 굉장히 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겁니다. 안락한 삶을 살아가던 선지자가 자발라위(하느님)의 계시를 받게 되고, 이후 동료들과 함께 관재인과 수장들로부터 핍박받는 동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발라위의 가르침을 실천하다가, 고난과 역경 속에서 마침내 압제자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얼마 못가 질서는 무너지고, 또 다시 압제자들이 등장하여 동네를 힘의 공포로 지배하고 모든 것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세 종교의 전승은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언제나 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동네 사람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가는 망각이라는 답을 내놓습니다. 같은 상황이 반복해서 일어나도 모두 잊혀지고, 결국엔 사람들이 가진 폭력적인 본성이 드러나 혼돈과 폭력이 찾아온다고 말이죠. 이런 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옛날 이야기를 반복함으로서 망각에 저항합니다. 작가가 생각하는 이야기의 본질은 바로 이거인 것 같습니다. 망각하지 않는 것. 우리 조상들이 남긴 이야기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제대로 기억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희망이 되돌아 온다고 믿으면서 말이죠.


마지막 장에서 벌어진 자발라위의 죽음과 마법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종교의 시대가 끝나고 과학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 사람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메세지처럼 읽힙니다. 작중에 나온 폭탄처럼 과학은 사람들을 새로운 억압과 파멸로 몰아갈 수 있지만, 반대로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을 자유롭게 해방시킬 수도 있는 도구입니다. 이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전적으로 우리들 손에 달려 있겠죠. 사람들이 지난 시대에서 교훈을 얻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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