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읽고
버지니아 울프는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영국의 작가로,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이자 당시 가부장적이던 영국 사회에 도전한 페미니스트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여성과 글쓰기에 대하여 발표한 「자기만의 방」은 페미니즘 비평의 시초이자 모범적인 저서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지난 이틀 동안 울프의 대표작 「등대로」를 읽었는데, 예상대로 쉽지 않았습니다. 모더니즘 문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기법인 의식의 흐름으로 쓰여진 탓에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꽤 벅찮습니다. 인물의 시점이 획획 변화하고,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이 구분없이 뒤섞인 문장들이 연이어 나오는 탓에 이야기가 종잡을 수 없고 모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어찌저찌 눈을 부라리며 집중하니 얼추 의미가 이해될 것도 같더군요.
「등대로」는 울프의 자전적 성격이 짙은 작품으로, 스코틀랜드 서해안의 작은 섬에서 휴가를 보내는 램지 가와 손님들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고지식하고 완고한 성격의 철학자 램지와, 상냥하고 포용력 많은 그의 부인 램지 부인, 램지가의 아이들과 손님들이 처한 각자의 상황과 떠올리는 생각들이 마구 뒤섞인 채 진행됩니다.
1부까지만 해도 이 작품의 주인공인 램지 부인인 줄 알았습니다. 램지 부인은 특유의 이타적인 성격으로 램지 가를 찾아온 손님들을 각별하게 대합니다. 그러나 그런 이타적인 성격 이면에는 타인을 자기 뜻대로 부릴려는 이기적인 면모 또한 가지고 있죠. 그녀는 아내로서의 삶의 만족하는 듯 하다가도, 불현듯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올바른 인생이란 무엇인지, 과연 자신이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건지.
2부를 지나 3부까지 오면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이 손님들 중 한 명인 릴리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릴리는 독신의 화가로, 주변 남성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홀로 살아가는 여성 인물입니다. 시간이 한동안 흐른 뒤,램지 부인과 딸 프루, 아들 앤드류가 차례로 죽고, 실의에 빠진 램지는 오랜만에 섬을 방문해 아들 제임스와 딸 캠과 함께 근처 등대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함께 방문한 릴리는 등대로 떠나지 않고 별장에 남은 채 그림을 그리면서 램지 부인과의 추억과 그녀의 삶을 떠올리며, 가정의 의미와 여성의 삶, 그리고 자신의 태도를 반추해 중요한 통찰을 깨닫습니다.
억압적인 가정에서 자기만의 뜻을 온전히 펼치지 못한 램지 부인, 억압의 주체인 동시에 남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까봐 두려움에 떠는 램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애증을 느끼는 제임스와 캠. 가정이란 울타리에서 괴로워하는 램지 가의 모습을 보면서 가정이 정말 행복의 원천인지, 아니면 사회의 모순 덩어리에 불과한지 저절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존재지만, 동시에 가장 이해하기 힘든 존재가 바로 가족이 아닐까요? 만약 램지 가의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했다면, 이 가정의 모습도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램지 가 외에도 냉소적인 뱅크스, 열등감에 짓눌린 탠슬리, 결혼을 망설이는 래슬리와 도일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울프는 인간의 삶과 그 무게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펼쳐보입니다.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이해하게 되는 순간 그녀의 통찰과 지혜에 놀라게 되죠. 울프의 다른 작품들은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