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일기

24. 조용한 미국인

그레이엄 그린의 「조용한 미국인」을 읽고

by 띠띠리따띠뚜


이해와 몰이해는 한 글자 차이에 불과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늘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죠. 무 썰듯 상대를 간단하게 재단해버리거나, 아니며 오랜 심사숙고를 거쳐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하는데 번번히 실패하고 마는 걸까요? 무언가를 이해하는 게 가능하기는 한 일 일까요? 아니, 애초에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한 걸까요?


서두부터 개똥철학을 늘어놓아서 죄송합니다. 윗 문단은 제가 그레이엄 그린의 「조용한 미국인」을 읽으면서 떠올린 생각을 적어본 글입니다. 이 작품이 상대를 이해할려는 모호한 시도가 결국 폭력적일 뿐이라는 진실을 과감없이 보여준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린은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영국의 소설가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수차례 영화화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도 했죠. 이번 「조용한 미국인」은 제가 처음으로 읽은 그의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그린이 얼마나 뛰어나고 훌륭한 작가인지 여실히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린은 소설 속 인물들을 단순히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그저 악과 더 나쁜 악 사이의 미묘한 갈등과 대립을 보여주며, 고상한 윤리관을 뽐내기 위해 악을 내세우지 않고 현실적이고 섬세한 악의 모습을 그려내 보이죠.


「조용한 미국인」은 세 남녀로 이루어진 삼각관계라는 상징적인 은유를 통해 당시 벌어졌던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화자이자 영국인 기자 토마스 파울러는 냉소적이고 무기력한 유럽 지식인을, 미국에서 온 젊은 올든 파일은 이상과 신념에 취한 미국 지식인을, 그리고 베트남 여성 후엉은 전쟁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베트남 민중을 각각 상징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실패한 영국에서의 삶에서 도망쳐 죽기 위해 베트남에 온 파울러는 그곳에서 젊고 매력적인 후엉을 만나 내연관계를 가집니다. 그는 베트남 피와 살이 튀기는 전장을 취재하는 기자의 삶과, 후엉과 사랑을 나누는 연인의 삶을 동시에 살아가죠. 그러던 중 두 사람은 미국에서 건너온 파일과 관계를 갖게 되고, 파일 역시 후엉에게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한 여인을 사이에 둔 두 남자의 갈등은, 끝내 후엉이 파일을 택하며 끝나는 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파일이 개입한 공작으로 인해 거리에서 테러가 발생하고, 그로 발생한 대량의 인명 피해에 큰 충격을 받은 파울러는 비밀리에 접촉한 적대세력의 도움으로 파일을 암살합니다. 그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만, 파울러는 파일에 대한 죄책감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이야기는 끝맺습니다.


파일은 작중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지식인 요크 하딩을 추종합니다. 하딩은 베트남에서 공산세력과 식민세력 모두 몰아내고 그가 주장하는 '민족적 민주주의'세력이 베트남을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민주주의 전파로 고묘하게 위장된 미국 제국주의의 민낮을 드러내는 장치로 보여집니다. 파일은 후엉에게는 부와 안정감이 필요하며, 자신만이 그것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독자들은 자기만의 이상과 신념을 고집스레 강요하는 그의 모습에서 자연스레 이후 벌어질 미국의 베트남 개입을 떠올리게 됩니다.


파울러는 어떤가요? 그는 후엉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이며, 그녀 스스로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본인조차 그말을 믿지 못합니다. 후엉은 연약하고 가련한 피해자도,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주체도 아닙니다. 그저 위험하고 고달픈 전쟁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입니다. 후엉은 베트남어로 불사조를 뜻하는데,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밖에 없는 불사조의 특성이 그녀를 설명하는 아주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두 남자 모두 자신의 이상을 멋대로 그녀에게 덧씌운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파일은 마지막까지 자아도취적인 이상에 취하다가 끝내 목이 잘린 시체가 되버리고, 다시 후엉을 곁에 두게 된 파울러는 평생 간직해야 할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죠. 진정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작중 나오는 전쟁에 관한 묘사는 번지르르한 이상 이면에 숨겨진 참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볏짚 속에 숨어있다가 적으로 오인당해 사망한 두 모자, 두려움에 떨며 망루를 지키는 어린 두 소년병, 찟겨진 아기를 무릎 위에 얹어놓은 어머니. 우리는 작중 전쟁을 바라보는 파울러의 건조한 시선처럼, 허울뿐인 이념의 잣대에서 벗어나 진실을 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더 이상의 비극을 막을 수 있을테니까요.


흥미진진하고 스릴감 넘치는 전개와 묘사 덕분에 아주 재밌게 읽은 작품입니다. 앞으로도 그레이엄 그린이라는 이름은 제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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