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란 파페의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를 읽고
2023년 10월 7일, 가자지구의 집권세력 하마스가 장벽을 뚫고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까삼 로켓을 발사하고, 땅굴과 낙하산을 이용해 장벽 근처 지역으로 침투한 하마스 대원들은 이스라엘 시민들을 학살하고 납치해 전세계적으로 큰 비난을 받았고, 미국과 유럽, 그리고 한국 또한 하마스의 행동을 비난하며 이스라엘에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를 밝혔습니다.
이번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분쟁을 접한 사람들은 어쩌면 이 분쟁의 맥락을 오해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주류 언론들은 이번 전쟁을 '극악무도한 무슬림 팔레스타인'과 '선량한 피해자 이스라엘'이라는 구도로 바라보고 있고요. 하지만 모든 사태의 배경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마스의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아닙니다. 왜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공격한 걸까요? 그리고 어째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끝없이 반목하고 있는 걸까요?
이스라엘 출신 역사학자 일란 파페는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를 통해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분쟁을 이해하기 위해선 1948년을 되집어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1948년은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이 건국된 해이자,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들이 살던 땅에서 쫒겨나고 학살당한 '나크바(대재앙)'의 해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주류 역사학계는 1948년의 일을 축소하거나 심지어 없었던 일로 여기기도 합니다. 이는 1948년에 이스라엘이 저지른 과오가 확실하기 때문이죠.
시온주의는 유대인들이 성서에 기록된 가나안, 즉 팔레스타인 지역에 자신들만의 민족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운동입니다. 유럽 사회에서 차별과 박해에 시달리던 유대인들의 시온주의 기획은 19세기부터 진행되어오다가,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 실현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나치 독일이 일으킨 홀로코스트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시온주의 이데올로기가 옹호받고 실현되는데 큰 도덕적 배경이 되어주었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시온주의자들은 오로지 유대인만이 거주하는 순수한 유대 국가를 설립하길 원했고, 수많은 아랍인들의 존재는 금새 눈에 가싯거리로 보이게 되었죠. 결국 시온주의자들은 목표(순수한 유대 국가)를 위해 잔인한 방법을 선택하기로 결정합니다. 바로 '종족 청소'를 말이죠.
종족 청소란 개념은 90년대에 일어났던 코소보 전쟁에서 제시된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특정 한 종족이 여러 종족집단이 뒤섞인 지역이나 영토를 균일화하기 위해 다른 종족을 몰아내는 행위를 뜻합니다. 파페는 종족 청소 개념이 1948년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데 적절한 단어로 평가합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아랍인들을 몰아내고 유대인이 다수를 차지하도록 하기 위해 온갖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수단을 동원했다고 말이죠.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끝나기도 전부터 시작된 종족 청소는 3월 10일 이후 '플랜 달렛'이라는 이름의 계획 하의 더욱 철저하고 집요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전까지는 자신들의 행동을 어디까지나 아랍인들의 공격에 따른 보복에 불과하다고 말하던 이스라엘 군사기구들(하가나, 이르군, 스턴갱)은, 이후부터는 대놓고 종족 청소를 위한 군사적 행동을 벌이게 됩니다.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에는 아랍어로 된 생소한 이름의 마을들이 연달아 나옵니다. 데이르야신, 에인알제이툰, 탄투라······, 끝없이 열거되는 이 지명들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수많은 팔레스타인 마을들의 이름입니다. 이스라엘 군사기구들은 추방, 방화, 학살, 약탈, 강간 등 온갖 전쟁범죄를 저지르며 팔레스타인인들을 쫒아내고 마을들을 파괴해버립니다. 오늘날 이 마을들의 폐허 위에는 공원과 삼림지대, 키부츠나 새로운 유대인 마을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물론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이죠.
많은 사람들이 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선 두 국가 해법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를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양도해야 한다고 말이죠. 각국의 여러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내의 진보적인 평화주의자들 역시 이와 같이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분쟁의 핵심은 1948년 쫒겨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환권이며, 이들 쫒겨난 난민들의 귀환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팔레스타인 분쟁은 해결의 실마리조차 잡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귀환권은 유엔이 인정한 보편적인 권리이며, 실제로도 수많은 난민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저자의 표현대로 인종주의와 종교적 광신에 물든 이스라엘 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자 지구 위로 로켓들이 날아다니고, 서안 지구에선 불법 정작촌이 확대되고 있으며, 이스라엘 영토에 존재하는 아랍인들은 여전히 차별과 박해의 위협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희망을 품습니다. 아직은 적은 수지만, 점점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조국이 과거에 저지른 범죄를 깨닫고 부당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또다시 피할 길 없는 질문이 제기된다. 홀로코스트가 벌어지고 있는 3년 뒤에 이 비참한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유대인들의 마음속에는 과연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까?' 저자의 질문에 과연 과연 이스라엘인들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요? 과거를 마주할 것인지, 아니면 외면할 것인지는 이스라엘인들 뿐만 아니라 이 분쟁을 지켜보고 있는 세계인들 또한 스스로 던져보아야 할 질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분쟁이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닌, 세상의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과 연결된 문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내외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들 편에 서기로 결심한 저자의 용기에 응원을 보내며, 하루 빨리 팔레스타인인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