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급식자리는 원래 내 옆옆자리였는데 거의 모든 음식을 임금님 수라상 앞 기미상궁보다도 적게 맛보는지라 자리를 바꾸어 그녀의 옆자리에서 밥먹은지 어언 넉달째..
한술이라도 더 먹이기 위한 전략을 펼쳐보았다.
1. 완전 맛있는 척
내 안의 연기세포를 몽땅 깨워 그녀를 쳐다보며 맛있게 먹었다. 입안의 음식물이 보인다면 안그래도 지하에 머문 그녀의 입맛이 지구내핵까지 뚫을 수 있기에 양볼은 적당히 두툼히, 입술엔 기름기를 살짝 두른 채 "이거 먹어봐~ 저거 먹어봐~ 완전 맛있어!" 권했으나 그녀는말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나의 연기는 국민배우이며 자상한 엄마의 표본인 전원일기 속김혜자님의 목소리에 보기만 해도 식욕돋는 쯔양님의 귀여운 먹방을 콜라보한 것이었으나..효과는 없고 오히려 내 몸무게만 늘어난 신기한 경험으로 끝났다.
2. 수저에 떠주기
먹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수저를 들지 않고 수저를 들지않으니 음식을 입에 넣지 않고 입에 넣지 않으니 씹지 않는 것이란 일련의 논리적 알고리즘을 발견한 뒤, 이 복잡한 알고리즘을 간단히 줄여주고자 직접 수저에 음식을 떠주기에 이르렀다.음식을 떠서 식판위에 올려둔 뒤 그녀의 어깨를 톡톡 쳐주었는데 그때마다나의 성의를 생각한 듯먹어주었지만 그 모습은 마치 슬로우모션을 보듯 느렸고 네 숟갈을 넘기기 쉽지 않았다.
3.한 입에 많이 먹기
단지 알고리즘의 축소로는 먹는 양을 늘리기 어려웠다. 혼자 먹게 두면 그녀는 내 눈치를 보다 못 이기는척 천천히 숟가락을 들고 밥의 가장자리를 살짝 떠서 밥알 15개내외를담은 뒤 천천히 씹어 음미했다. 늘 조금씩 먹는 모습을 보고 '저래서야 미뢰가 제 쓸모를 알기가 어렵겠군.. 놀고 있는 미뢰에 음식물을 가득 채워 아밀라아제 분비를 촉진시켜야겠다!'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녀의 식사습관과 정반대라 다소 도전적인 방법이었으나 "많이 먹어야 더 맛있어~"하면서 듬뿍 담아줘봤다. 결과는 대성공!!!!!! (입터지게 줬다고 오해할까봐 적자면 그래봐야 보통아이들 한숟갈 양이다.)
그녀는 올해 처음으로 밥을 거의 다 먹었는데 기쁨에 찬 나는 두 엄지를 치켜세우며 연신 "따봉"을 외쳤다.
홍진영의 '엄지척'도 모를 나이의 그녀에게 1989년도 델몬트 오렌지 주스에 나왔던 '따봉'을 외치다니...
외치는 동시에 전두엽에서 '너 이 말 왜했냐?'는 물음이 들리는 듯 했다.
나란 여자는 자기성찰적 사고를 중시하므로 가만히 생각해봤는데...
그 순간만큼은 1989년 3학년의 내가 되어 친한 친구에게 축하해주듯 그 시절, 신날 때마다입에서 자동발사되던 그 단어를 외쳐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녀에게 칭찬하면서 "오늘 다 먹었는데 이 식판 사진찍어서 어머니께 보여드려도 될까?"허락을 구했고 그녀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결국 이 사진을 차마 그녀의 어머니께 보내지 못했다. 이런 날은 그 날 딱 하루 뿐이었는데 나의 메세지가 오히려 그녀의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델몬트 광고 속 브라질 농부들처럼 춤추며 따봉을 외칠 수도 있으니 그녀가 밥을 조금만 더 먹었으면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