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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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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따봉'에 대한 단상

늘 입맛이 제로에 수렴하는 학생과의 일화..

그녀의 급식자리는 원래 내 옆옆자리였는데 거의 모든 음식을 임금님 수라상 앞 기미상궁보다도 적게 맛보는지라 자리를 바꾸어 그녀의 옆자리에서 밥먹은지 어언 달째..

한술이라도 더 먹이기 위한 전략을 펼쳐보았다.


1. 완전 맛있는 척

내 안의 연기세포를 몽땅 깨워 그녀를 쳐다보며 맛있게 먹었다. 입안의 음식물이 보인다면 안그래도 지하에 머문 그녀의 입맛이 지구내핵까지 뚫을 수 있기에 양볼은 적당히 두툼히, 입술 기름기살짝 두른 채  "이거 먹어봐~ 저거 먹어봐~ 완전 맛있어!" 권했으나 그녀는 말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의 연기국민배우이며 자상한 엄마의 표본인 전원일기 속 김혜자님의 목소리에 보기만 해도 식욕돋는 쯔양님의 귀여운 먹방을 콜라보한 것이었으나.. 효과는 없고 오히려 내 몸무게 늘어난 신기한 경험으로 끝났다.


2. 수저에 떠 주기

먹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수저를 들지 않고 수저를 들지않으니 음식을 입에 넣지 않고 입에 넣지 않으니 씹지 않는 것이란 일련의 논리적 알고리발견한 뒤, 이 복잡한 알고리즘을 간단히 줄여주고자 직접 수저에 음식을 떠주기에 이르렀다. 음식을 떠서 식판 위에 올려둔 뒤 그녀의 어깨를 톡톡 쳐주었는데 그때마다 나의 성의 생각한 듯 어주었지만 그 모습은 마치 슬로우모션을 보듯 느렸고 네 숟갈을 넘기기 쉽지 않았다.


3. 한 입에 많이 먹기

단지 알고리즘의 축소로는 먹는 양을 늘기 어려웠다. 혼자 먹게 두면 그녀는 내 눈치를 보다 못 이기는척 천천히 숟가락을 들고 밥의 가장자리를 살짝 떠서 밥알 15개내외를 담은 뒤 천천히 씹어 음미했다. 늘 조금씩 먹는 모습을 보고 '저래서야 미뢰가 제 쓸모를 알기가 어렵겠군.. 놀고 있는 미뢰에 음식물을 가득 채워 아밀라아제 분비를 촉진시켜야겠다!'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녀의 식사습관과 정반대라 다소 도전적인 방법이었으나 "많이 먹어야 더 맛있어~"하면서 듬뿍 담아줘봤다. 결과는 대성공!!!!!! (입터지게 줬다고 오해할까봐 적자면 그래봐야 보통아이들 한숟갈 양이다.)

그녀는 올해 처음으로 밥을 거의 다 먹었는데 기쁨에 찬 나는 두 엄지를 치켜세우며 연신 "따봉"을 외쳤다.

홍진영의 '엄지척'도 모를 나이의 그녀에게 1989년도 델몬트 오렌지 주스에 나왔던 '따봉'을 외치다니...

외치는 동시에 전두엽에서 '너 이 말 왜했냐?'는 물음이 들리는 듯 했다.

나란 여자는 자기성찰적 사고를 중시하므로 가만히 생각해봤는데...

그 순간만큼은 1989년 3학년의 내가 되어 친한 친구에게 축하해주듯 그 시절, 신날 때마다 입에서 자동발사되 그 단어를 외쳐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녀에게 칭찬하면서 "오늘 다 먹었는데 이 식판 사진찍어서 어머니께 보여드려도 될까?"허락을 구했고 그녀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결국 이 사진을 차마 그녀의 어머니께 보내지 못했다. 이런 날은 그 날 딱 하루 뿐이었는데 나의 메세지가 오히려 그녀의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델몬트 광고 속 브라질 농부들처럼 춤추며 따봉을 외칠 수도 있으니 그녀가 밥을 조금 더 먹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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