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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도원의 빛나는 복숭아
Jul 14. 2023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어차피 다받아야 시작을 할터인데
그렇게 니가먼저 받겠다 성낼거냐?
어젯밤 준비하며 설렜던 이마음이
모래성 쓰러지듯 와르르 무너지네
서른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생활하며 평화를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준비물 하나를 나눠주는데도 먼저 받고 싶어 우르르 몰려드는 귀여운(?) 동심 앞에서 나는 안전사고의 우려라는 명분으로 성난 사자의 얼굴을 하며 으르렁~ 대기 일쑤다.
작은 것에 초흥분상태가 되어 기뻐했다가 금방 또 사소한 것에 세상 잃은 얼굴로 너무도 서운해하는 아이들이라 나는 종종 이방원에 빙의하여 정몽주를 달래듯 하여가 비슷한 소리를 나불댄다.
나불댄다고 표현한 까닭은 어차피 내 목소리는 아이들 귀에 나비의 날개짓같은 나불거림으로 스쳐지나갈 뿐이기에...
또한 그들은 정몽주마냥 나의 나불거림 따위에 쉬이 넘어오지 않는 뚝심있는 성격이기에...ㅎㅎ
5~6학년만 6년가량을 내리하다가 올해 4학년에 내려오게 되었는데 저,중,고학년으로 나뉘는 초등의 특성에 맞게 역시나 5,6학년과 4학년은 천지차이였다.
기본적으로 5,6학년은 내가 뭘 주든 관심도가 그리 높지 않다. 좋아도 좋은 티를 크게 내지 않고 싫어도 싫은 티를 잘 내지 않... 는게 아니라! 싫은 건 엄청 격하게 싫은 티를 낸다. 그래서 고학년을 할때는 말랑한 속마음을 숨기며 "나는 돌부처다. 나는 돌부처다." 혹은 "AI처럼 상냥하게~ AI처럼 상냥하게~"를 중얼대며 최대한 감정 소모를 줄인다.
하지만 그에 비해 저학년이나 중학년 아이들은 감정표현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아무리 애를 써도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다.
처음 4학년 교과서를 살펴보곤 '음.. 한 시간에 나갈 수업량이 너무 적은데? 이거 뭐 진도 팍팍 나갈 수 있겠는걸'이라고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한 시간 수업량을 한 시간에 끝내지 못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구차하게 변명을 해보자면.. 이것은 별거 아닌 나의 발문에 서로 대답하겠다고 흔들어대는 그 보드라운 팔뚝을 외면할 수 없어 손든 모든 아이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고.. 또 내가 기대한 것보다 아이들이 훨씬 더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계획된 시간보다 더 쓰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아이들의 반응을 기대하고 즐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즐거워하며 끝내기를 아쉬워하면 "원래 마무리해야하는데 특!별!히! 10분 더 줄게요"라며 선심을 쓴다는 의도를 팍팍 냈고 그 댓가로 "예~!!!"하는 우렁찬 환호를 받으니 말이다.
그럴 때의 내 모습은 솔직히 수업을 주도하는 근엄한 교사라기보다 오히려 주인 앞에 가서 몸을 발랑 뒤집어 배를 보여주면서 상하체를 흔들며 바닥을 부비는 강아지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분명 수업을 준비하고 선심을 쓰듯 시간을 더 준 건 나였으나 아이들의 환호는 강아지가 제 주인에게 쓰다듬음을 받은 것 마냥 엄청난 보상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인터넷 심리검사에서 나는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뱅갈호랑이'로 나왔으나
아이들 앞에서 나는 '주인의 사랑을 갈구하며 발라당 배를 까뒤집는 강아지'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