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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나에게 고행과 열반을 동시에 선사해 준 크리스찬~

그는 크리스찬이다.

그의 이름만 들어도 그의 종교를 짐작가능한데 쓰기 쉽고 부르기 좋게 그를 크리스'찬'이라 부르겠다.

찬이는 정말 매력적인 아이다. 찬이의 매력 중 가장 큰 매력은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만약 교직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교사였다면 그 평범하지 않음을 엄청난 스트레스로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매일 밤마다 <오늘의 찬이>를 떠올리며 도대체 왜 그는지 원인을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일을 20년 넘게 하다 보면 적당히 타협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내가 고민한다고 그 아이의 비범한 행동이 멈추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나름의 해결책을 내놓는다 해도 그것이 그를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이끌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큰 문제가 아니고서는 그냥 그 나름을 인정해 주는 것이 찬이에게도 나에게도 이롭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찬이에 대해 매일 일기로 쓸 수 있지만 하나의 일화만 소개하자면..



  첫 현장학습 가던 날.. 우리 반 남학생 중 한 명은 나와 함께 앉아야 할 운명이었다. 나는 나와 앉게 될 아이가 그 사태(?)를 좋아할지 싫어할지 짐작하기 어려웠고 아이들의 동태를 파악한 후 함께 짝을 이루기 어려워 보였던 그를 내 옆에 앉히기로 아이들에게 공표했다. 그 역시 이 대접을 약간 특별하게 받아들이고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현장학습 가는 버스 안에서 그는 내게 신세계를 선물했는데 그건 바로 출발에서 도착에 이르는 40분 동안 3초 이상의 쉼을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고 끝없이 조잘대는 것이었다. 그 조잘댐으로 인해 나는 그의 성장과정과 동생의 성격, 친한 친구의 이름, 그 친구와 최근 년 사이에 함께 놀았던 에피소드,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각자의 취미와 직장, 심지어 지금 현재 그의 어머니가 에코백을 메고 어느 구립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내가 굳이 대답을 하지 않더라도, 반쯤 풀어진 눈으로 창 밖을 보더라도, 그러다 포기하고 고개를 15도 즈음 반대쪽으로 돌렸음에도 그의 입은 멈추지 않았고, 내 귀는 그의 말을 덜어내기 바빴으나 그럼에도 몇 가지는 머리에 저장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 까닭에 현장학습에서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 전에 나는 살짝 고민을 했다. 내 귀가 견딜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그 조잘댐을 다른 아이에게 전가한다면 나는 얼마나 나쁜 교사인지 잠시 성찰의 시간을 가진 후 다시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아침에는 햇 때문에 눈이 부셔서 밖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오후에는 시야가 탁 트여 그도 창 밖을 보는 듯했고, 나는 드디어 어느 정도 침묵의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겠구나 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15초쯤 흘렀을까.. 그가 반가운 목소리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창 밖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논두렁과 산비탈, 띄엄띄엄 집들 정도였는데...

"선생님 저기 좀 보세요. 저기가 아까 제가 말한 그 공원 아래 물 흐르던 곳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거기도 저기처럼 저런 새까맣고 큰 파이프 같은 게 터널처럼 있었고 물이 신발 높이 정도만큼 흐르고 있었는데 제가 처음에는 거기 내려가기 너무 무서웠는데 한 번 내려가보니까 어쩌고 저쩌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쭉 빼서 초점 없는 눈으로 쳐다보는 척했고(현장학습 다녀오는 길은 원래 좀 지치는 법이다. 절대 내가 귀찮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휴~)  

  그는 바깥풍경에서 익숙한 무언가를 발견할 때마다 나를 불러재꼈기 때문에 나는 갈 때보다 더 피곤한 오는 길을 맞아야 했다. 근데 솔직히 우리나라 땅덩이가 기가 막히게 다변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는 길이나 오는 길이나 다 '여기가 거기' 풍경이었기에 나는

"선생님!! 저거 보이세요?? 저기는 아까 제가 말한 어쩌고 저쩌고 (니가 듣든 말든 내 얘기는 계속되지)"를 스무 번쯤 더 들었고 학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선생님과 꽤 친해졌다는 만족감을 온 얼굴에 보이며 쿨내 진동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찬이는 손으로 만지작 거리기를 좋아하고 주변의 잡동사니로 그럴듯한 장난감을 잘 만든다. 장난감을 잘 만드는 건 꽤나 시간이 흘러서 알게 된 것이고 처음엔 그저 무엇이든 잘 주워오는 아이라 생각했다. 더럽고 말고는 애당초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평범하지 않은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주워온다. 돌이든 플라스틱 조각이든 금속조각이든 나사든..

  학교 오는 길이나 놀이터에서 뭔가를 발견하면 꼭 주워와서 만졌는데 수업시간에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나는 그의 집중력을 내게로 당겨오기 위해 그 물건들을 잠시 내 책상에 두기도 했다. 혼자 공상에 빠지는 경우도 많은데 어쩌다 친구들이 해야 할 일을 챙겨주고자 얘기하면 지적처럼 느껴지는지 "지금 딴짓하는 게 아니고 생각하고 있는 거잖아!"라고 날카롭게 반응하기도 했다.

  분명히 그를 위한 진단명이 존재할 것이라 여기면서도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가장 힘든 아이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나름의 원칙에 따라 나는 그와 친해지기로 했고, 우리반에서 그에게 충고나 지적은 나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건 찬이에게 꽤나 신선한 변화였는데 나는 때때로 복근이 생길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로 "크리스찬~~~!!!"이라 크게 부르기도 했으나 그보다 더 자주 완전 반대의 방법으로 "선생님이 지금 너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어~"라든지 "선생님 좀 봐줄래?"라든지  "내일은 조금 더 노력하는 모습 보여줄 수 있을까?"라든지, 긴 잔소리의 끝에 마무리 양념처럼 "선생님이 너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지?"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와의 한 학기가 끝나가는 지금.. 그를 위한 나의 지도 과정은 불자의 고행처럼 쉽지 않았으나 그는 가끔 나를 열반의 경지에 다다르게 한 적도 있었으니..


  분명 그가 하고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눈길을 돌렸는데 착실히 적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 시각적 열반이요.

  어려운 문제를 풀다가 또박또박하고 조리 있는 말투로 그 문제가 묻고자 하는 바가 정확히 이러이러한 게 맞는지 내게 확인한 것이 청각적 열반이요.

  그 언젠가 계단에서 누군가와 부딪혀 물을 쏟았을 때, 예전 같았으면 당장에 따져 물으며 문제를 키웠겠지만 꾹 참고 그 계단을 이용할 다른 누군가를 위해 교실까지 와서 화장지를 챙긴 후 다시 가서 닦은 행동은 그야말로 정신적 열반이었다.(물론 그의 시야는 넓지 않았기에 대충 닦아 마무리는 내가 해야 했지만..)


크리스찬! 선생님을 고행의 길에서 때로 열반의 경지까지 이르게 해 주어 고마워. 이는 마치 종교대통합의 아름다운 모습 같구나. 남은 며칠도 잘 부탁하고.. 우리 2학기에는 좀 더 정신 차려보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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