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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신사임당 주니어 같은 그녀

  그녀의 목소리는 침착하면서도 다정하고 항상 말투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묻어있기에 그녀의 목소리만 들어도 내 기분은 스팀다리미가 스쳐간 면포 마냥 개운해진다.

  초등학교 4학년밖에 안 된 아이가 마치 그 옛날 조선시대 예절교육을 받은 것 마냥 얼마나 예의 바른 지..

그녀를 떠올리면 신사임당이 생각나는데 신사임당이 풀과 벌레를 좋아한 것처럼 그녀는 꽃과 새를 좋아한다.

(신사임당이 딸을 낳았으면 그녀와 닮았을 거란 생각에 신사임당의 자녀정보를 찾아보니 신사임당은 4남 3녀를 낳았다고 한다. 율곡 이이만 지금껏 알려졌으나 분명 나머지 자녀들도 능력과 인품이 출중했으리라.. )

  하여튼.. 신사임당 주니어 뺨치는 이 아이는 아주 예쁜 이름을 가졌으나 그 이름을 밝힐 순 없으니 '임당'이라 부르겠다.


  임당이는 아주 조용한 아이라 내게 다가와 한 마디의 개인적 대화를 나누지 않는 날이 더 많지만 대화를 나눈 날은 정말 특별한 대화를 나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임당이와의 대화~



  과학 수업을 위해 4월에 아이들에게 화분을 하나씩 나눠주고 강낭콩을 두 알씩 심은 뒤 학교 뒤뜰 화단 앞에 두고 주기적으로 물을 주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물을 주는데 자기 식물에게 '정콩이, 콩콩이, 쑥쑥이, 달콩이, 콩순이' 등등의 이름까지 지어준 귀여운 아이들이라 등하굣길에 화분을 보러 가는 경우가 많았다.

사건이 있던 그날은 5월의 어느 날이었는데 아이들 두 명이 헐레벌떡 교실로 달려왔다.

"선생님 지금 임당이가 죽은 참새를 손에 쥐고 교실로 오고 있어요!"

(깜짝 놀라)"왜??"

"모르겠어요. 선생님한테 보여준다고 들고 온대요"

"헉....(오면 안 돼!!!! 제발~~~)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거야. 그냥 묻어주라고 전해~"

(아.. 반성한다.. 비겁한 변명을 하자면 나의 생각은 늘 깊고 깊은 동심에까지 미치지 못하기에 저 순간에는 그저 죽은 참새를 교실에 들이고 싶지 않았다.)

눈치 빠른 아이들은 단박에 나의 심정을 알아채고 "네~!" 외친 뒤 임당이를 말리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하지만 그녀는 굳은 심지를 지닌 조선의 딸이지 않은가? 그녀의 성정답게 만류하는 아이들에도 담담히 나를 찾아 교실로 들어왔다.


  풀이 죽은 얼굴로 두 손에 소중히 참새를 들고 있는 모습은 신사임당 초상화에서나 볼 법한 아우라를 내뿜었기에 나는 말문이 막혀 말릴 수 없었고, 이윽고 내게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말했다.

"선생님 얘가 살아있는 것 같은데 안 움직여요. 정말 죽은 것이 맞나요? 상처도 없는데요"

그녀의 아우라에 나는 이미 반성회로를 다섯 바퀴 돌린지라 그녀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참새에게 다가가 자세히 관찰했고

"그러게~ 상처가 없네....(아....뭐라 말하지???? 그거야!) 아마 다쳐서 죽은 게 아니라 나이가 많아서 잠자듯이 죽은 걸 거야. 그러니 묻어줄까?"라고 묻어주길 권했다.

다행히 임당이는 조금 가벼워진 얼굴로 "네~"라고 대답했고 주변의 친구들은 함께 묻어주겠다 나섰으며 그들은 뒤뜰 화단 모퉁이에 땅을 파고 작은 봉분을 만들고 나뭇가지로 비석모양까지 만든 뒤 참새의 영면을 기원하며 절도 스무 번쯤 올린 뒤 나의 당부대로 손을 깨끗이 씻고 헤어졌다.


그로부터 이틀쯤 지났을까.. 한 아이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임당이가 어제 참새 무덤을 파헤쳐서 다시 그 참새를 꺼냈어요!"

나는 놀라서 임당이에게 확인했고 임당이는 놀란 기색도 없이

"선생님 그 참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꺼내서 봤어요."라 말했다. 아... 임당이 진짜...

"얼굴 보고 다시 묻어줬지?"

임당이가 끄덕끄덕~

"잘했어. 보고 싶어서 꺼내봤구나. 이제는 참새가 푹 쉴 수 있게 해 주자~"

임당이 또 끄덕끄덕~


임당이는 그날 이후로는 무덤에서 참새를 다시 꺼내지 않았는지 가끔 내게 "선생님 그 참새 얼굴이 자꾸 생각이 나요"라고 얘기했고 나는 "선생님도 종종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이 나~ 생각나면 생각해도 돼~ 자연스러운 일이야~"라고 공감해 주었다.




이렇게 마음씨 고운 임당이기에..

임당이가 어느 날 나에게 그려준 그림을 나는 책상 유리 아래에 보기 좋게 끼워놓았다. 8시 20분을 가리키는 내 눈을 임당이가 9시 15분의 둥글고 밝게 웃는 눈으로 그려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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