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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요리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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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전쟁

단 한번의 승리를 위해!

저는 자칭,타칭 금손입니다.

그리 긴 인생은 아니지만 자라는 과정에서 손과 관련하여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손끝이 야무지다'에서 시작하여 '손이 빠르다'를 지나 '오~! 진정한 금손!'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 손이 범접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요리'입니다.

손을 이용한 대부분의 업무처리 속도는 동일 그룹 내 상위 5% 이지만 요리에서만큼은 하위 5%에 머무는 저는 요리 한정 '진정한 똥손'입니다.

그래서 음식 앞에만 서면 김수희의 '애모' 가사처럼 한없이 작아집니다. 제 손으로 만든 요리를 통째로 버리고 김수희의 '애모'처럼 뒤돌아 눈물지은 적도 숱하게 많습니다.


그러니 요리글에서만큼은 저는 '소인'입니다.



소인 벌써 결혼한지 17년이 지났습니다.

소인의 요리입문은 이유식이었는데  거기에는 여러 까닭이 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입덧으로 고생한 것이 첫번째 이유였고,

출산과 동시에 모유수유를 위해 50일을 친정엄마표 미역국만 퍼먹은 것이 두번째 이유였고,

이런 저로 인해 남편이 자연스레 골방에서 외부음식으로 스스로 식사를 해결하게 된 것이 세번째 이유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인생 최고의 걸작, 유일무이한 '아들'의 입에 들어가는 이유식만큼은 제 손으로 만들어 먹여야 했던 저의 고집이 마지막이면서 결정적 이유입니다.

 

요리를 못하고 맛도 잘 못보는 소인이 아들을 얼마나 아끼는지는 저희 부부의 일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모유를 먹으며 쑥쑥 크는 신생아가 너무 사랑스럽고 그 작은 생명체가 싸놓은 배설물 마저도 너무 소중했던 저는 어느날 기저귀를 갈다가 유난히 모양이 예쁘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그것을 그냥 버리기 아까웠던 나머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가위,바위,보 해서 지는 사람이 티스푼으로 이거 한입 떠먹자~"

그때 남편이 지은 표정을 가만히 떠올려보니 언젠가 제가 냄비째 버렸던 국이 버려지기 30초 전, 기대에 찬 남편의 입속으로 후루룩 들어간 직후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듯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했던 소인이 요리를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소인이 요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작은 승리를 위해 기록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물론 소인의 이러한 전쟁 배경에도 아들이 존재합니다.

키 168cm에 겨우 53kg을 턱걸이하는 아들,

학교급식이 집밥보다 맛있다는 아들,(이것은 사실 자명한 이치입니다. 학교급식 최고!)

하루에 아침 한 끼만 집에서 먹는데 그 조차도 네 숟가락에 머물러 있는 아들,


그 아들이 2년 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인 수능날, 소인이 만든 도시락을 먹게 됩니다.

그때까지 소인.. 무수히 많은 패배를 맛보겠지만 '수능날 제대로 된 점심도시락'만큼은 반드시 승리로 이끌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흔들리는 배 위에서 난중일기를 쓰신 이순신 장군님처럼 소인의 요리일기를 소소하게 써보려 합니다.

소인은 제 그릇을 아는 겸손한 자이므로 이순신장군님같은 큰 승리를 바라지 않습니다.

부디 제게 '수능날 제대로 된 점심도시락'만큼은 승리로 이끌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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