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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전쟁

요리하고 조리하는 요리조리 클럽

<자칭 타칭 금손인 저는 요리에 있어서는 하위 5%의 똥손이기에 요리전쟁 글에서만큼은 제 주제를 파악하여 스스로를 '소인'이라 칭합니다.>


아들의 고등학교 입학은 소인의 요리생활에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일단 점심과 저녁을 학교에서 급식으로 먹고 오니 아침 한 끼만 먹이면 되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는데..

가급적 부드러운 고기류로 단백질을 보충해 주는 것, 단 한 끼의 집밥인 만큼 '집밥 다운 집밥'으로 주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그는 입맛이 꽤 까다롭고 밥정이 없는 편이라 초등학교 1학년 때에는 여덟 개 학반 모든 어린이들 중 가장 늦게 밥을 먹는 일이 잦았고, 그럼에도 디저트에는 일찍 눈을 떠 아이스홍시나 요구르트가 나온 날은 담임선생님께 하나 더 먹고 싶다는 의견을 당당히 개진하여 '늦게 먹는 주제에 디저트를 하나 더 먹는 당돌함'을 보였으며, 십 대에 이르러서 고운 피부에 여드름을 달고 살면서는 디저트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 까칠함을 탑재한 터라 '먹이는 것'이 늘 저의 숙제였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고등학교 영양사선생님과 조리사 선생님들 모두 '신의 손'을 갖고 계신 것인지 고등학교에서의 급식은 그의 까다로운 입에 어느 때보다 잘 맞았고, 여간해서 음식을 칭찬하지 않는 아들이 "학교밥이 맛있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보다 급식이 훨씬 맛있다", "오늘은 00 메뉴가 나왔는데 맛있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전하곤 했습니다.

소인은 아들에게 "수업시간에 집중해라, 졸지 마라, 필기 잘해라" 이런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으나 틈만 나면 "급식시간에 제일 많이 먹는 아이를 쳐다보면서 밥을 먹어라", "너희반에서 제일 잘 먹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라", "엄마는 하루 세 번 매점을 방문했다. 하루에 두 번은 간식을 사 먹어야 청소년기의 기초대사량을 충당할 수 있다"면서 그의 폭식을 부추겼으나.. (아직도 그는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녀의 고입에 맞춰 성적향상과 대입준비에 열을 올리는 다른 엄마들과는 다르게 소인은 삼 년 뒤에나 있을 '수능도시락'에 관심이 높아졌고, 이를 위해 각자의 요리비책을 공유하는 직장 내 요리클럽을 결성하는 추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소인의 최종목적은 '수능도시락, 단 한 번의 승리'였고, 호화찬란한 메뉴가 아닌 일상적인 집밥 메뉴를 담을 것이기에 일상적이고 사소하지만 쉬운 레시피가 필요했습니다.

시금치무침, 콩나물볶음, 계란말이, 된장찌개, 부추전, 생선 조림 같은 음식을 일관성 있는 맛으로 만들어내는 재주가 소인에게는 없었고 만개의 레시피와 인스타그램의 핫한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것도 그다지 훌륭한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소인과 똑같은 급식을 먹고 생활하기에 입맛조차 비슷할 수밖에 없는 동료들을 제 요리전쟁의 동반자로 끌어들여 함께 맛보는 승리를 달성하고자 했습니다. 소인과 비슷한 나이대의 동료들은 자식들조차 제 자식과 연령이 비슷하기에 '직장맘으로서 자식에게 한정적인 요리를 해줄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 서로의 레시피 공유로 함께 꿈꿔갈 아름다운 식탁문화'를 어필하면서 요리클럽 가입을 권했습니다.    

  소인, 요리에서만큼은 제 주제를 알고 낮은 자세로 임하나 직장에서는 불도저와 같은 성미를 겸비한지라 반강제 비스무레하게 열 명의 회원을 모았고 당초 목표였던 "요리조리 유자식 클럽"이라는 명칭을 쓰기에는 한 명의 회원이 아직 무자식인지라 지아비 '부'자를 넣어 "요리조리 유부클럽"이라 이름 붙이고 제 맘대로 회칙도 만들어 공표하였습니다.


1. 한 달에 두 번 사소하지만 정말 쉬운 레시피를 공유하기

2. 주방도구, 양념, 식재료 추천도 가능함.

3. 공구추천도 환영, 구입희망자가 여럿이면 동작 빠르고 셈이 빠른 소인이 총무를 맡아 공구 진행함.

4. 이 모임은 1년 갈 예정, 6개월 내 탈퇴불가니 탈퇴희망자는 소인과 개별상담요망


직접 만나 요리를 함께 하면 더 좋겠지만 그녀들도 소인도 각자가 짊어진 사회적 굴레가 여러 개라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서 사진과 글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클럽의 결성과 함께 마치 천군마마를 얻은 양 의기양양하고 자신감이 상승했던 저의 석 달 보름 전 모습을 생각하면 그 무모하면서도 과감한 도전에 웃음이 절로 납니다.


클럽이 결성되고 3개월 보름이 지난 지금, 레시피 공유는 두 달째 감감무소식입니다. 그녀들이 요리를 멈춘 것도 아니요, 제가 요리를 멈춘 것도 아니지만 요리 중 사진을 찍고 설명을 적어 서로에게 공유하는 그 행위를 감당하기에 우리의 '낮'과 '밤'은 쉴 틈 없이 너무나 치열하게 굴러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배우고자 낮은 자세로 임하려던 소인이 실패한 요리를 계속 올릴 수도 없거니와 그녀들에게 빨리 레시피를 공유해 달라 재촉할 수도 없기에 그렇게 우리는 두 달째 침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하지만 소인, 배움을 멈추지 않았고 제자리걸음 같으나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기에 언젠가 그 침묵을 깨고 저의 레시피로 하여금 우리 클럽을 다시 부흥시킬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요리조리 유부클럽 파이팅!! (클럽장은 가정식을 요리학원에서 전문적으로 배웠다던 서경주님 맡겼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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