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학부모님 면전에서 차마 못한 이야기를 쓰기까지..(2)

생각에서 멈춘 것이 실천으로 오기까지

 세 단계에 걸쳐 나의 생각은 실천으로 옮겨졌다.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은 십수 년 전 아이를 낳고 그림책을 열심히 사다 나를 때였다. 엄마들 사이에 입소문 난 책은 엄청나게 많았지만 그것을 다 사기에 책들의 가격은 너무 비쌌고 나의 월급통장은 가벼웠기에 늘 이상과 현실 사이를 방황하며 사야 할 책의 목록을 손보며 머리를 쥐어짜다가 ‘와~ 내가 책 써서 한편이라도 대박 난다면 이런 고민을 안 해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하지만 나는 육아와 직장이라는 높디높은 두 개의 산을 넘나들며 가파른 골짜기마다 한숨짓는 처지였기에 우아하게 앉아 글을 쓸 여력이 없었다.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두 번째 한 것은 몇 년 전 어느 커뮤니티에 가입했을 때였다. 직장과 지역을 떠나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여성만 모인 카페였고 반 이상이 중년에 접어들어 이해심이 넉넉한 이들이었기에 나는 이성의 끈을 풀어헤치고 때로는 맥주 한잔을 걸친 후 취기가 한껏 오른 채로 글을 썼다. 그 당시의 내 글은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생선처럼 비린내가 풀풀 났는데 그래서 그런가 많은 회원들이 칭찬해주곤 했다.(그녀들 또한 나처럼 일상에 지쳐 때때로 이성의 필터를 떼버리고 싶었으리라..) 어떤 회원은 내게 책을 써보라 권해주기도 했는데 큰 욕심 없던 나는 ‘책을 출판해서 쌍꺼풀 수술 비용만큼만 벌면 참 좋겠다.’생각하며 웃을 때마다 8시 20분을 가리키는 눈을 9시 15분으로 바꿔보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면 세우기만 했다. 이루지 못할 꿈조차 소박하게 꾸는 나는, 진정 내 그릇의 크기를 아는 겸손한 여성이므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세 번째 한 것은 얼마 전 옆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그녀는 작년에도 우리 옆반 교사라 일 년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인데 항상 온화하고 자상하며 늘 입가에 따뜻한 미소를 띤 그야말로 예쁘고 자상한 선생님의 표본 같았다. 비유하자면 나는 지지고 볶고 삶고 끓이고 튀기고 요란하게 왔다 갔다 하며 요리하는 주방보조이고 그녀는 재료의 특성을 유지하며 우아하게 한 접시 세팅해 내는 파인다이닝 요리사 같달까? (파인다이닝을 가본 적이 없어 상상에 의존하여 비유해 봤을 뿐..)

나는 지지고 볶아가며 평화를 유지하는데 그녀는 어떻게 저렇게 우아하게 학급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내심 궁금했던 나는 나에게는 없지만 그녀가 갖고 있는 요소를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1. 젊음

   내가 그녀보다 십 년 이상 더 살았고 육안으로 보자면 십오 년은 차이 나니 우리의 생기의 차이는 당연히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도 느낄 것이다.

2. 아름다움
   젊음에 아름다움까지 더해진다면 그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가지는지 누구나 알고 있다. 이것은 인류의 긴 역사에서 증명된 것으로 모든 직업을 넘나들며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외모의 아름다움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내면의 아름다움도 가진 흔치 않은 사람이다.

3. 언제나 다정한 목소리와 평온한 심성

  이건 노력으로 가능할 수도 있겠다. 나도 대부분은 다정한 말투를 탑재하고 평온한 심성을 유지한다. 하지만 학급에 어떤 사건이라도 발생하면 나의 말투는 강약중강약의 4분의 4박자를 넘어서 무속음악에서 유래된 덩기덕쿵더러러러의 굿거리장단으로 바뀌며 흡사 굿판과 비슷한 푸닥거리 한판을 벌이곤 한다. 굿거리장단 치기를 참아내며 다정한 목소리와 평온한 심성을 유지하는 것은 어쩌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4.5. 도 있으나 나의 이미지와 그녀의 이미지를 생각해야 하기에 생략...  


  어쨌든 이렇듯 완벽해 보였던 그녀가 얼마 전 학급 아이들을 지도하며 느낀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다. 한 번도 그녀의 입을 통해 고민을 들어본 적 없는 나는 짐짓 놀랐으나 학부모이자 교사입장에서 학부모와 어떻게 상담하고 가정연계지도를 요청할지 최대한 성의껏 조언해 주었다.

  사실 학급에 이런 일이 생기면 퇴근 후에도 교사의 머릿속은 매우 복잡해진다. 어떨 때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무력한 내 모습의 초절정 상태에 이르러 좌절의 끝판왕을 느끼고 있을 때 꿈에서 깨는 경험도 허다하다. 그녀 또한 나에게 이야기한 것 만으로 마음이 가벼워졌을 리 없으니 퇴근 몇 시간 후 카톡으로 안부를 물어보았다. 나의 카톡에 그녀는 나의 말을 곱씹어보게 된다며 나더러 교사들 책장에 꽂아놓고 힘들 때 읽어보는 한 페이지 형식으로 책을 써주면 좋겠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나의 가슴에는 다시금 ‘잘하면 쌍꺼풀 수술비를 벌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용솟음쳤다. (기승전 쌍꺼풀수술비...)


  그녀는 교사들이 읽을 한 페이지 형식이라고 했으나 사실 나는 학부모에게 쓰고 싶었다. 이 땅의 수많은 교사들이 생리적 현상조차 참아내며 열심히 일하지만 학부모들은 그 노력의 5퍼센트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학급의 모습은 축소되고 단편적인 모습이 많고 그 이면에 숨은 교사의 교육적 의도를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일일이 ‘내가 여러분들의 자녀를 위해 이렇게 머리 굴려가며! 몸이 상해가며! 온 마음을 쏟아가며! 지도하고 있습니다’라고 알리는 것 또한 무척 어려운 일이다. ‘참교사는 단명한다’는 슬픈 이야기의 배경에 이런 점도 작용했으리라..

그러므로 나의 글이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


매거진의 이전글 학부모님 면전에서 차마 못한 이야기를 쓰기까지..(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