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사랑하는 아들에게

엄마의 '말기'목록

  이렇게 말해야 하나. 저렇게 말해야 하나. 무수한 고민 속에 네게 하지 못했던 말과 하지 않을 말들을 글로 옮겨보려 해. 언젠가 네가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때 이 글이 너에게 닿기를 바란다. ^^

  글보다 말이 빠르고, 쉽고, 정확하고, 논리적인 너희 부자(夫子)와 달리 엄마는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야.

그래서 아빠와 연애할 당시 엄마는 아빠에 대한 불만을 차마 말하지 못해 글로 옮겨 전했고 시간이 지나며 아빠는 엄마의 편지를 받는 것을 조금씩 불편해했지. ㅎㅎ 사실 아빠에게 쓴 편지는 다섯 손가락도 채우지 못했는데 그 까닭은 아빠가 느낀 불편함 때문이라기보다 글로 옮겨진 것을 다시 아빠와 말로 풀어야 하는 번거로움에 지친 엄마의 '자발적인 멈춤'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 

  너에게 쓰는 편지만큼은 엄마의 못난 마음을 쏙 빼고 너를 향한 사랑만 가득 담아 써 보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해보려 해. '사랑'이라는 말이 때로는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단어인가 잠시 고민하기도 했는데 최대한 담담하게 적어볼게.

  누군가 엄마에게 '소울메이트'를 묻는다면 주저 없이 '아들'이라고 답할 것 같아. 너에게 엄마가 '소울메이트'로서의 자격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언제나 엄마의 '소울메이트'였어. 늘 부족하고 모자라고 실수도 많고 후회도 많았지만 엄마의 모든 것을 이해해 준 너였고 나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준 존재가 너였기에 너는 엄마의 '가장 큰 세상'이었지. 너에게도 엄마가 가장 가까우면서도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너는 성년을 몇 년 앞둔 고등학생이 되었구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이지만 터널처럼 주변이 온통 막막한 어둠으로 느껴질 시기. 그러다 터널 끝이 다가오며 갑자기 밝아지는 주변에 정신이 확 드는 것처럼 어느새 끝나있을 시기. 엄마에게 고등학교 3년이 그랬기에 너에게만큼은 그 터널이 암흑으로만 느껴지지 않길 바랐단다. 그랬기에 너의 터널에 손전등하나 켜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건넸던 말들이 오히려 너를 더 깜깜한 어둠으로 밀어 넣은 것은 아닌가 모르겠네.. 

  요즘에서야 느끼는 것이 내 입장에서 '따뜻한 걱정'이 상대방에게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준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의 성장을 가장 가까운 엄마가 인정하지 않고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오히려 너의 독립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겠지. 너는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을 되돌아보고 몇 년 후 다가 올 너의 완전하면서도 건강한 독립을 위해 엄마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첫 번째가 말기 목록이야. 네가 엄마에게 하지 말라고 말했거나 불편해했던 것들을 하지 않는 것... 



네 앞에서 한숨 쉬지 말기

절대 공부로 눈치 주지 말기

일찍 자라고 강요하지 말기

잘하지 못해도 한심해하지 말기

내 잣대로 너를 평가하지 말기

내 짐작만으로 때려 맞히지 말기

피곤한 너에게 말 많이 하지 말기

네 앞에서 부정적 단어 쓰지 말기

너의 피곤한 모습 앞에 걱정이란 핑계로 부담 주지 말기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고 종종 보면서 마음을 다진다.. 

깜빡깜빡 자주 꺼지는 기억력을 움켜잡으며 이 모든 말기를 실천하려 노력할 테니 너는 한 가지만 하기


지금은 티끌을 모아 태산을 쌓아야 할 시기임을 알고 너의 인생을 스스로 잘 설계하기


엄마는 언제나 우리 아들을 믿는다~ 

(믿는데.. 진짜 믿는 거 맞는데.. 널 보면 걱정이 되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잔소리를 꾸역꾸역 입안에 가둬두느라 엄마도 쫌 힘들긴 하네..ㅋㅋ)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