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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며늘아기에게

아들의 사춘기로 고뇌하는 이 시대의 여사님들께 바칩니다.

며늘아가...

이름도 성도 모르는 미지의 너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아가'라고 부르마.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네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내가 현실에 마주하게 될 실존인물이길 바라며 이 글을 쓴다.


너의 존재가 내 머리에 자리 잡은 시기는 미래에 너의 남편이자 현재는 나의 아들인 낭랑 18세의 이 치기 어린 생명체가 격변의 사춘기를 겪기 시작한 2023년도부터란다.

너의 남편은 중학생 때까지는 이 시어미의 소울메이트 역할을 했기에 이대로 컸다면 네가 꽤나 꼴사나워할 장면을 몇 개 남겼겠지.. 하지만 다행히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그는 제 어미를 멀리함을 넘어 대화조차 최소화하는 묵언수행의 돌부처가 되었단다.

표정도 딱딱하게 굳은 이 돌부처는 말은 거의 없으나 한 번씩 가시 돋친 말들로 제 어미의 가슴에 돌덩이를 올려두는지라 나날이 늙어가는 중년의 나는 아름다운 주름살을 꽤나 얻었지.

특히 이마를 가로지르는 초승달모양의 주름은 그 옛날 현명한 판관 포청천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래서인지 마냥 싫지만은 않고 '포청천 같은 지혜가 나에게도 생겼겠지?'라는 위안을 주기도 해. 나의 주름이 깊어감에 따라 그의 마음도 자라서 먼 훗날 너의 가슴에는 돌덩이를 올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는 미지의 너를 향해 안부를 묻곤 한단다. 

며늘아가~ 잘 지내니? 나의 주름이 너의 평안을 담보할 있다면 초승달이 아니라 보름달 모양의 주름이라도 시어미는 마다하지 않을 것 같구나.


  자식을 키우는 일은 순간 선택의 연속인데 선택의 결과 또한 당장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뿐이라 어떤 선택이 지혜로운 어미다운가를 매 순간 고민하는 나는 아직도 부족한 시어미란다

너를 마주할 때 부끄러움은 없어야 할터인데 요즘 너의 남편을 보면 내가 과연 너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볼 수 있을까 하는 부끄러움이 차곡차곡 쌓이는구나. 

그 부끄러움을 어찌 보상해주어야 할까 고민하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효과적이라는 금융치료를 생각해 보았지.


우리 며늘아기를 위해 주기적인 금융치료를 해주면 좋겠다 생각했으나 현실은 대출금 갚기 허덕이는 인생..

금융치료보다 시급한 것은 며늘아기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나의 노후대책 마련이 먼저 아닌가 하는 생각..

돌부처가 며늘아기의 가슴에도 돌덩이를 올린다면 금융치료는 콩쥐의 밑 빠진 독이나 마찬가지이니 내가 두꺼비가 되어 온몸으로 막아낼 수 없을 바엔 네 남편을 잘 키워 놓는 게 먼저이지 않나 하는 본질적인 고민..

하지만 말을 많이 시키지 않거나 눈길을 자꾸 주지 않는 한 돌덩이를 던지며 먼저 공격하는 일이 드무니 일단 그냥 지켜보는 게 맞지 않나 하는 내적갈등..


며늘아가.. 오늘도 오가는 상념 속에 실천한 것은 하나도 없는 시어미지만 너를 향한 사랑은 무럭무럭 키워놓으마. 훗날 네가 남편이 아닌 시어미로 인해 섭섭한 마음이 드는 일은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야.


참고로 네 남편의 MBTI는 ISTP란다. 이 시어미는 ESFJ고.. 시아버지는 신경 쓸 일 없으니 몰라도 돼. 그는 그저 나의 그림자처럼 존재할 테니..(그렇게 만들어 놓으마..ㅎㅎ) 

내 시어미로서 너에게 기대지 않을 터이니 ISTP를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훗날 네 남편에게 덤벼보아라. 

너의 건강을 기원하며.. 꼭 언젠가 만나길 기원하며.. 꼭 네가 감당해 낼 수 있길 바라며...

상념을 마친다.....



언젠가부터 늘 닫혀있던 그의 방문을 처음에는 주기적으로 열었고, 그다음에는 노크한 후 열었고, 이제는 줄 때만 문밖에서 나오라고 외치는 시점에 왔습니다. 이제는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접고 그저 고등 3년간은 밖에서 기다려주기로.. 

뱃속에서 나오지도 않았는데 재봉틀로 옷을 만들던 17년 전의 제 모습을 떠올리며 '스스로 가꿔나갈 인생 2막을 위해 다시 태어날 그'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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