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타칭 금손인 저는 요리에 있어서는 하위 5%의 똥손이기에 요리전쟁 글에서만큼은 제 주제를 파악하여 스스로를 '소인'이라 칭합니다.>
소인에게도 나름 제 요리의 역사를 함께 해 온 레시피가 하나 있습니다.
요리똥손에게 계량이란 공기 중의 산소와 같은 것이기에 계량 없이 눈대중으로 하는 요리는 마치 수라간 나인이 엄동설한에 찬물로 설거지하다 지나가는 임금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임금님이 뿅 반해 승은을 하사하여 마침내 수라간을 벗어나는 그런 희박한 확률의 것이지요. 얼마나 희박한지 이런 스토리는 구전동화에도 없습니다. 신데렐라도 요정할머니가 주신 드레스에 유리구두까지 착장 한 뒤 무도회장에서 12시가 다되도록 스텝 밟으며 신나게 춤춘 뒤에야 왕자의 마음을 얻었으니 말입니다.
하여튼.. 소인이 딱 하나 눈대중으로 하는 요리가 있는데 그게 바로 소고기애호박볶음입니다.
소인의 아들 녀석이 중학교 '기술과 가정'시간에 집에서 해 먹는 반찬 하나를 골라 요리법을 적어오는 수행평가를 했는데 그때 아들이 적어갔던 요리법도 바로 이것입니다.
입이 짧은 녀석이 자라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꾸준히 먹어준 음식이기도 하고 애호박과 소고기는 사계절 언제나 구할 수 있는 데다 계절에 따라 맛이 변하지 않는 고마운 식재료라 소인과 같은 요리똥손에게는 구세주와도 같은 요리입니다. (적고 보니 자신이 없어집니다. 애호박 맛이 계절 따라 다르면 어쩌나.. 소인의 혀로는 같게 느껴졌는데..)
제일 자주 하는 요리라도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눈대중으로 하기에 어느 날은 짜고 어느 날은 달고, 어느 날은 소고기의 비린 맛이 나고, 어느 날은 애호박의 풋내가 나고.. 그럼에도 늘 대충 눈으로 쓱 양념들을 넣는 소인은 역시 고집불통...
오늘 오후에 아들 녀석이 입맛이 없다길래 실패한다면 입맛이 더 떨어짐을 알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이 요리를 해봤습니다.
먼저 소고기를 잡채용으로 준비하여 마늘 다진 것, 간장, 설탕, 맛술 적당히 넣어 조물조물 밑간을 해줍니다.
그다음 애호박의 껍질을 벗긴 뒤 길게 반토막을 내어 속을 숟가락으로 파줍니다.
다음이 가장 난도가 높은데 1mm 정도의 두께로 균일하게 썰어줍니다. 정말 요리 초짜였던 시절에는 얇았다가 두꺼웠다가 줏대 없이 나대는 칼날 때문에 익히는 단계에서 꽤나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소인 16년째 이 요리를 잊을만하면 하곤 하기에 이제는 적당히 비슷하게 썰 수 있습니다! (자심감!)
다음에는 썰어놓은 애호박을 그릇에 담고 소금을 적당히 뿌려줍니다. 맛소금도 좋고 히말라야핑크솔트도 좋고 아무거나 넣으면 됩니다. 솔직히 소인은 이 단계를 가장 좋아합니다. 어차피 애호박을 소금에 살짝 절이기 위한 단계라서 20분 뒤에 물로 씻어줄 예정입니다. 그렇기에 소금을 좀 많이 넣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지요. 소금으로부터 해방된 것 같은 느낌에 소금을 팍팍팍 치면서 소인의 감정곡선도 따라 팍팍팍 올라간달까요? (달달한 것은 입에 잘도 처넣으면서 소금 간은 벌벌 떠는 소인은 정말 사리분별이 안 되는 똥멍청이입니다. 그러면서 사 먹는 음식은 나트륨 함량 따윈 전혀 신경 안 쓰고 입에 쫙쫙 붙는 나트륨 대폭발 음식만 선호하는 모순된 삶... 오늘도 반성합니다.)
20분 뒤 애호박을 물에 헹구어 꼭 짜두고 밑간 한 소고기부터 궁중팬에 익히기 시작합니다. 실리콘 주걱으로 적당히 잘 휘저어주어 소고기가 거의 다 익었을 무렵 소고기를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가운데에 애호박을 넣습니다. 그 언젠가 소고기 위에 애호박을 부어서 볶은 적이 있는데 기분 탓인지 정말 그랬는지 약간 비렸기에 그다음부터는 항상 고기를 좀 밀어내고 가운데에 애호박을 부어 익힙니다. 애호박이 반 이상 익었다 싶을 때 노사연의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를 부르며 애호박과 소고기를 만나게 해 줍니다. 이제부터 같이 쉐킷쉐킷~ 다 되었다 싶으면 불 끄고 참기름 살짝 둘러 마지막 쉐킷쉐킷 후 그릇에 담으면 끝!!
한 번에 많이 해서 두 군데에 옮겨 담은 것이 아닙니다. 소인은 그렇게 담대한 여성이 아닙니다. 이 반찬이 망하면 아들의 저녁식사는 오리무중에 빠지므로 기필코 한 번은 성공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애호박 두 개를 각각 썰고 소고기를 이등분하여 각각 밑간 한 뒤 일련의 과정을 두 번에 걸쳐 각각 완성한 것입니다. ㅎㅎ
소인의 정성에 하늘도 감동하셨는지 다행히 그리 비리지도, 그리 풋내가 나지도, 그리 짜지도, 그리 달지도 않은 소고기애호박볶음이 완성되었습니다. 따뜻한 밥과 섞어 동글동글 주먹밥처럼 만들어 접시에 담아주니 아들이 싹 다 먹어 주었습니다.
내일도 잘 먹어주면 좋으련만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올 저 반찬을 오늘만큼 잘 먹어줄지 모르겠습니다. ^^
오늘의 전쟁도 이만하면 승리!
수라간 나인이 얼마나 예뻐야, 또는 임금님의 눈이 얼마나 멀어야 음식하고 설거지하는 몰골이 아름답게 보이겠냐마는.. 요리하는 모든 이는 예쁩니다. 암요~ 누군가를 해먹이려는 마음은 언제나 반짝반짝 예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