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2
어설픈 꼰대는 누구에게나 환영받지 못한다
재수한다는 친조카 소식에 목소리도 들을 겸 통화를 했다.
대화 중 '그래도 대학은 가야 되지 않냐고' 묻길래 '왜 가야 되니!'라고 반문했다.
짧은 통화를 마치고 후회가 밀려왔다. 부끄럽고 너무 창피했다.
'꼰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명문 대학이면 후회가 덜 했을까? 가볍게 생각해보며 나는 대학 진학을 후회한다.
후회라기보다 아쉬운 마음이 크다. 선택의 아쉬움이다. 왜 진학을 했을까? 생각해 보면.. 그냥!
그냥 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로에 대해 고민한 적 없기에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했다.
성적에 맞춰 원서를 넣고 예비합격이지만 가장 가까운 곳으로 대학을 갔다.
성적이 좋지 않아 예비일 텐데 그걸 또 굳이 들어갔다(웃음).
대학 생활은 목표도 없었기에 재미도 없고 시간만 축내고 다녔다. 그래도 몇 사람 건진 게 다행이다 싶지만 아쉬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대학뿐 아니라 살다 보니 그러한 선택을 많이 했다. 물론 알아가는 과정이 꼭 나쁘지만 않았기에 얻은 것도 있지만, 남들이 하는 선택에 이유 없는 동참은 남는 게 별로 없다.
아무개는 말한다. 젊은 나이에 선택은 잃을 게 없다고, 그래서 실패해도 또 도전해야 하는 거라고.
그 아무개는 '나는 나이가 많아 이제는 할 수 없다'며, 젊은이들에게 되돌려주려 한다. 아무개는 현재 사회를 이끌며 나이가 든 세대, 즉 기성세대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도전조차 못해 말만 하는 아무개일까! 기성세대를 보며 자라온 수많은 나. 혹여나 나의 바람을 대신해주지는 않을까! 싶은 그런 나는, 변화를 받아들일 용기가 있기는 한 걸까. 다 그런 거라고? 입장이 있을 수 있으니 생각을 해볼 수는 있겠지만 글쎄..
나는 결코 무책임하다.
한 분야에만 오랜 경험이 있다고 해서 결코 도전이 없는 건 아니다. 전통적인 방식의 요리법이 있듯이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맞게 생겨나는 요리법도 있다. 그에 대한 결과물은 같다. 예를 들면 스테이크를 만드는 방법은 팬에 오일을 두르고 각종 향신료와 버터, 불과 오븐을 이용해 만들어 낸다. 그러나 가열방식을 바꿔 끊는 점이 100도 이하에서, 재료를 투명한 비닐에 넣고 조리하는 방식이 있다. 바로 '수비드' 방식이다. 이 조리 방법은 주방에서 불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정성이 없는 방법이라고 논란이 되었지만, 지금은 세계 곳곳에 널리 쓰이고 한국 역시 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도전(용기) 하지 않는 나는 죽어 있다
나(당신)에게 하는 말이다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일을 한다.
반려견과 산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주말에는 연인과 데이트를 하고 가족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우리는 살고 있다. 각자의 모습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 각자는 어디 있을까?
젊은 시절 나의 도전이 쉽지 않아 듯, 지금의 나도 용기 내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다. 뿐만 아니라 다른 이에 도전과 용기도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수 천 번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한 아이는(누구든) 비로소 뛸 수 있기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곁에서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 그뿐이다. 늦은 때란 없고 못할 거란 법도 어디에도 찾을 수 없으니 우리는 용기를 내야 한다.
"내가 너 나이라면 다 할 수 있겠다"라는 말은 이제 쓰지도 듣지도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