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그동안 뭐 했어요?

휴한 안 하고 학교 안 갔어요?

by Nchips

네. 휴학 안하고 학교 안 갔습니다.


저도 몰라요. 부끄럽지만 엄마에게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무슨 명문대에 모범생이냐고요? 전혀요. 그냥 평범합니다. 근데 왜 말 못했냐고요? 그래서요. 명문대에 모범생이 아니라서요. 휴학하겠다고 하면 돌아올 말이 뻔했거든요. 아, 그렇다고 엄마를 비난하는 게 아닙니다. 저희 엄마도 평범하세요. 평범하게 딸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냥 쫄았습니다. 제가 말했던가요? 전 회피형이거든요. 갈등을 싫어합니다. 귀찮아하고요. 그래서 말 안하고 안 갔습니다. 바보 같은 짓인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 그동안 뭐했냐고요?

뭐 안 했습니다. 그냥 놀았어요. 아주 찝찝하게. 그 당시 제 루틴을 설명해드릴게요.


1. 일단 기상한다.

2. 학교 가는 척 한다.

3. 다른 버스를 탄다.

4. 모르는 곳에서 내린다.

5. 고민한다. (미래에 대한 고민..등)

6. 다시 집에 온다.

7. 자책하다 잠이 든다.

8. 잠을 설친다.

9. 무한반복


Firefly_An emotionless character lying in bed at night, eyes open, unable to sleep. The room  279140.jpg 출처: Adobe Firefly 생성형 AI


전형적인 회피형의 굴레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뭘 안 해서. 그럴 기운도 없었어요. 아, 하나 기억났다. 그런 생활이 조금 반복되었던 즈음에, 공원에 홀로 앉아 시간을 때우고 있었는데요.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는 겁니다. 정말 평화롭고 따분한 오후였는데 말이죠. 그 길로 인터넷에 자살상담센터인가? 뭐 아무튼 그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금은 점심시간입니다. 잠시 후 전화를 다시 걸어주세요. 가까운 센터에 방문하세요."


Firefly_An emotionless character sitting alone on a park bench in the afternoon, holding a ph 279140.jpg 출처: Adobe Firefly 생성형 AI


12시 40분을 지나고 있더군요. 어이가 없었는지 금세 호흡이 돌아왔습니다. 갑자기 현타가 오더라고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제가 아프다는 걸.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일상생활이 힘들다는 걸. 뭐 우울증, 무기력증이겠지요. 병명이야 붙이면 다 그럴 듯 하니까. 그래서 일단 아무 것도 안하기로 했습니다. 뭐, 그럼 그 전에는 뭔가를 하고 있었나고요? 아뇨. 근데 '마음 불편하게'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턴 '마음 편하게' 아무것도 안하기로 했습니다.


인정하니까 편했습니다. 미래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죽으면, 어차피 미래는 없을 거거든요.

그렇게 한 학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학기는 휴학했습니다.

엄마에게 욕 뒤지게 먹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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