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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권력자와 2인자 관계

참 어렵고 어려운 사이

by 동남아 사랑꾼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On China)"의 글 중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최고 권력자와 2인자 관계다.


"2인자는 경쟁자가 치고 들어올 틈을 남겨 두지 않을 만큼 최고 권력자, 즉 1인자와 충분히 가까워야 하며, 하지만 최고 권력자가 위협을 느끼지 않을 만큼만 가까워야 한다(It(the second man) requires being close enough to the leader to leave no space for a competitor but not so close as to make the leader feel threatened).


이는 전제국가 2인자의 정치적 생존이 본질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를 키신저는 말하고 했다.


실제 1959~1967년간 국가주석을 지낸 유소기가 문화혁명 시기에 감금되었고, 마오쩌뚱의 후계자 린비오가 쿠데타 후 역외 탈출하다가 의문의 비행기 추락사한 것을 염두에 두었다. 마오쩌뚱의 광기 어린 미친 통치에 안전판을 40년간 제공하고, 특히 미중 데탕트의 핵심 고리 역할을 한 주은래 총리의 영향력이 거의 사라지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것이 마오쩌뚱 시대의 중국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지 않고, 동서고금 어느 나라에나 어느 조직에나 적용되는 인생의 룰이 아닐까.


1998년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후계자로 내정된 2인자 안와르 부총리 겸 재무장관(지금 말레이시아 총리)을 쳐내는 모습도 2인자인 안와르가 마하티르와 아시아 금융위기, 즉 말레이시아 경제위기 해법을 두고 차이를 보여 경질시키고 김옥에 까지 보낸 사례도 있다.


우리 정치에서 보면 선출 권력인 대통령과 임명직인 총리 관계가 그렇고, 정부 조직 내 장관과 차관, 중앙부서의 국장과 심의관, 기업의 사장과 부사장, 부장과 차장간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직에 있을 때 조직 내 어떤 부서의 2인자도 해보고 1인자도 경험했지만, 2인자의 역할은 참 어렵다. 너무 나서면 1인자에 미움과 견제를 받고, 가만히 있으면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2인자 때는 너무 아이디어를 많이 내거나 잘 난척하면 아래위에 끼여 난감한 처자가 된다. 그 어려운 2인자 시기를 어떻게 잘 보내는지 여부가 한걸음 더 나아가는데 중요하다. 백지 한 장 차이인데 출중한 능력을 가진 2인자로 멈춰서는 선배들을 많이 보았다.


난 그 기간 동안 축적의 시간으로 활용했다. 추후 작은 부서였지만 1인자가 되었을 때 2인자의 처지를 십분 이해하고 그에게도 공간을 주었다.


은퇴 후 2인자 자리에 있는 후배가 아래위에서 욕 들어 먹는 소리가 내 귀에 까지 닿으면 축적의 시간으로 삼고 너무 잘난 척도 바보짓도 하지 말라는 이행하기 상반된 어려운 조언 아닌 조언을 하곤 했다.


최고 권력자와 2인자의 관계는 이렇듯 어렵고, 모순덩어리지만 삶 자체가 불완전한 것들이라는 어느 책을 읽으며 지나간 그때의 상황을 반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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