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 불고기와 권력의 헛헛함
9월 셋째 주 토요일, 가을을 알릴 비가 많이 내린다. 추석 성묘 가는 고속도로에 뿌연 안갯속에서 자동차 꽁무니의 빨간 후미등만 보일 정도다. 아차 날을 잘못 잡았다 싶었는데 고향 산소 근처에 도착할 때쯤엔 날이 개었다. 사촌 동생 부부와 우리 부부 포함 히꼬(반려견)는 부산서 나머지 동생은 상주에서 나머지 사촌들은 대구서 경주서 왔다.
금년 4월 성묘 때 벌초해 둔 산소가 조상님들 묘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억센 풀들이 자랐다. 하지만 비 온 뒤라서 억센 풀이 잘 뽑혀 날짜를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몰아치던 고속도로 때 생각과는 정반대다. 사는 것도 다 생각하기 나름이고, 앞에 닥친 불행이나 언짢음에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하며 순간적인 생각이 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한참 풀을 뽑고 벌초하는데 산소 아래쪽에 붙어있는 사과나무에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렸다. 언뜻 보면 아이들의 그림 속에 나올 법한 모양이다. 이뻤다.
벌초와 성묘 후 시골 읍내 화령 장터에서 자연산 버섯전골과 차돌박이 된장으로 맛있는 점심하고, 경주 형수님이 맛있는 영양 떡을 준비해 오셔서 가구당 한 봉지 주셨다. 나와 우리 집사람의 아침 식사론 제격이다.
우리 부산팀은 며칠 후 음력 내 생일 기념으로 부산 오는 도중 울산 근처에 있는 언양 불고기집에서 생일 파티를 했다. 제수씨가 사준 파리바케트 케이크도 한 조각씩 나눠 먹었고 사진도 찍어 우리 가족 카톡방에 올려놓았다. 내심 두 아들이 아빠 생일을 어떤 식으론 축하해 주겠지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둘째 아들이 달랑 "생일 축하해" 문자만 남겼다. 둘째가 작년 결혼에 최근 딸을 낳았는데 무심한 아들 대신 며느리가 전화라도 할지 모르지라며 마누라가 비아냥 거린다.
언양 불고기 집은 대선 전 2021.12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이준석 당 대표, 김기현 원내대표등이 이곳에 와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 한 곳이라고 같이 간 동생에게 듣고, 인생의 참 헛헛함도 느꼈다.
내가 생일 턱으로 계산을 하며 우리만 언양 불고기 먹어 미안한 마음에, 고기를 썰고 있는 여주인에게 아양인가, 사교성인가, 어쩜 그 중간 어디의 말투와 몸짓으로 야외에서 숯불로 고기 굽는 냄새를 맡고 있던 우리 히꼬에게 주게 한점 달라니, 그 인심 좋은 여주인은 선뜻 고기를 먹기 좋게 몇 점이나 주었다. 히꼬는 "이거 웬 쇠고기"하며 날름 맛있게 먹고는 횡재한 표정에 긴 혀로 입주위를 연신 핱고, 눈알도 굴리고 꼬리까지 흔들었다. 아마 며칠 후 할아버지 생일 턱인 줄 알았을지 싶다. 말은 못 해도 EQ에 눈치가 빨라, 그는 이런 호사를 또 보려면 할아버지가 오래오래 사셨으면 내심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두 아들이 장가 안 간다고 했도, 아이 날 생각도 안 해 할아버지, 할머니 소릴 못 들을까 봐 2022년 멕시코서 히꼬를 입양했을 때 아빠, 엄마 대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그런지 히꼬도 이 호칭에 익숙해 있다.
언양 불고기 먹고 오는 길에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고, 울산과 부산 사이에 있는 가지산으로 해지는 모습이 보인다.
9월 성묘를 다녀오며 그저 평범한 일상과 세상 구경을 하며 소소한 즐거움과 그 속에서 한 권력의 무너짐과 헛헛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