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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그림자 마주하기

마누라 잔소리

by 동남아 사랑꾼


엊그제 아침 식사, 엄밀히 말하면 빵 한 조각과 과일 샐러드에 내가 갈아 직접 걸러 마시는 원두커피 한잔 정도다. 긴 더운 여름이 언제였냐는 듯이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해운대 아파트 중간 나무와 여러 식물들을 심은 조그마한 쉼터에 히꼬 오줌을 누이러 갈 땐 거센 빌딩풍과 해풍이 겹쳐 반소매와 반바지 차림으론 서늘하게 느끼게 한다. 올해 유난히 더운 이 여름에 털이 많아 안쓰러웠던 히꼬가 부럽기도 할 정도로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아침 일찍 히꼬 똥과 오줌을 누이고 집에 들어오니 쓰레기를 안 버렸다고 볼맨 목소리다. 내가 버럭 화를 낸다. 그는 또 말한다. 남의 일이라면 오지랖 떨면서 아이들 교육이며 집안일엔 무지와 무관심하고, 이미 돌아가신 시어머니 천성을 닮아 그럴 거라고 단서는 달았지만, 밖에선 지나치게 착한 척한다는 것 등 등이다. 결국 표리부동하다는 것이다. 나 또한 질세라 너도 너를 닮은 히꼬도 남한테는 잘하는데 집에 오면 일인자인양 유세를 떤다며 맞받아친다. 우린 36년 결혼 생활을 이렇게 보냈다


그는 내가 마음속 무의식 그림자의 실체를 몰라 내게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자기는 이미 오래전에 그림자를 알고 마주해 평화를 유지한다고 한다. 세상 사람 99%가 애써 그림자를 무시하며 살고 있다고도 한다. 자기는 1%에 속한다고 도통한 도사처럼 말한다.


내가 버럭 화내는 것은 남한테 오지랖 떨며 착한 척하다가 만만한 마누라한테만 버럭 화를 내 풀고, 착한 척하는 것도 자기도 남이 그렇게 해주길 무의식 기대와 바람 때문에 오버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어디서 그딴 개똥철학을 알았는지 묻자, 몇십 년 칼 유우를 연구해서 자연히 몸에 밴 것이라고 한다. 그가 그런 책이며 유튜브를 보는 건 몇 번 보았다. 그러면서 칼 융의 유튜브를 몇 개나 링크 연결해 주면서 눈도 흐릿해지는데 쓰잘데 없는 책들을 읽지 말고 내 안에 숨어있는 그림자를 마주하며 자기 성찰을 하라고 한다. 반박할 수 없어 칼 융 유튜브를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다.


칼 융은 내 안의 그림자를 3단계 과정을 거쳐 마주하라고 한다. 인식- 대화- 화해다.


이런 일장 훈시를 들은 후 서울 출장을 왔는데 다음과 같은 카톡이 왔다. 그의 카톡에는 내 호칭이 여보 당신이 아니라 '서정상'이다. 내 이름의 두 글자에 일본의 씨에 해당하는 '상'을 붙인 호칭이다.


" 서정상,


백 년 만에

그림자 덕분인가

여행 가는 꿈꾸었데

뭔 꼭대기에서 해운대 바다 보면서 건덩건덩 넘어가는 건데

바다 빛깔이 너무 멋져,


내 평생 바라본 바다색 중에 그리 아름답고 황홀한 색으로 나타난 적이 없었네,


당신 없이 편해서 그런가

내가 그러니 실재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지, 그림자와 화해하고 나면

내 세상이 세상에서 보지 못하는 걸로 찬연히 떠올라 아롱진다는 걸 당신 에게 알려주니까,


완전 그림자 통합이네

통찰 초월 현현

좋은 거 다 나오네 ㅋㅋ"


내처는 내 브런치가 허접하다며 안 본다. 그래서 이런 디스를 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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