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대처럼 두발을 땅에 두며
해운대 가을바람이 분다. 옷 깃을 여며야 할 정도다. 엊그제만 해도 더워 잠을 못 잤는데 서늘할 정도다. 자연의 이치다.
인생사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듯, 세상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외 우파와 좌파 간 정부가 교체한다.
중남미 핑크 물결도 2005년 신대륙에 몰아치다가 세계화 긍정적 여파로 우파가 등장하고, 다시 2020년 좌파의 핑크 물결로 바뀌었다. 트럼프 영향인가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등 중남미에서 다시 우파 물결이 밀려온다. 내가 몇 년 있었던 멕시코에서는 좌파 성향의 암로에 이어 쉐난바움 정부가 집권을 이어가겠지만, 여타 중남미 집권 좌파 정부들이 다가올 선거에서 질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전망이 많다.
한국 정치도 마찬가지다. 내가 공직을 시작한 1988년 전두환 정부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그리고 이재명 정부까지 진보와 보수 정부가 오거니 가거니 했다. 공직자는 중립이 절대 깃발이지만, 현실은 풍향에 따라 처신을 강요당하는 분위기에 살수 밖에 없었다. 조신하게 행동하고 말해야 하고, 때로는 나도 모르게 진심이 나올 수도 있도 무의식 중에서 조차 자기 검열과 자기 체면 속에 살아왔다. 지금 그런 이중성에서 좀 더 자유로워져 좋다.
트럼프의 미국도 지금은 제멋대로지만, 이 또한 지나간다. 세상사가 미국 혼자서 다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자명한 이치다.
"바람 타기 잘해야 하지만, 바람에 휩싸여 깃발을 여기저기 옮기는 철새 같은 자세도 옳지 않다.
바람에 따라 깃발은 움직일 수 있지만, 깃대가 왔다 갔다 하면 안 된다.
외교란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히는 예술이다. 말로 기교를 부리는 게 아니다."라고 80세를 바라보는 송민순 전 외교장관의 최근 언론 기고문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지금 해운대에 바람이 분다. 내가 옷깃을 여미야 하는 정도지만, 그 바람은 나를 삼킬 수는 없다. 두 발로 땅에 단단히 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