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블랑 펜을 잃고 나서
“소중한 것은 잃어버리기 쉽다. 소중하지 않고 값싼 것은 잘 잃어버리지 않는다.”
오늘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밑줄 긋고 메모할 요량으로 챙겨 간 10년 넘게 애지중지하던 몽블랑 볼펜을 잃어버렸다. 혹시나 해서 다시 카페로 가는 길, 근처를 지나던 60대 남녀 분들이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맥락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 내 귀에 쏙 들어왔다. ‘아, 그러네’ 하며 잃어버린 몽블랑 볼펜이 떠올랐다.
소중히 사용해 왔지만 “은퇴 후엔 비싼 볼펜심 왜 사냐”며 핀잔을 주던 아내의 ‘저주(?)’가 통했나 싶기도 했다. 요즘은 교보문고에서도 몽블랑 매장이 없어져 백화점에 가거나 온라인 구매를 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번거로워 해외 나갈 때 큰맘 먹고 심을 몇 개 사 오곤 한다. 이번 11월 캄보디아 출장에서도 몇 개 사 와, 몇 달은 걱정 없이 쓰겠구나 했는데 이제 그 심들은 서랍 어딘가에 그냥 묵혀 둘 운명이 된 듯하다.
혹시나 해서 다시 찾으러 간 카페에서는 결국 펜을 발견하지 못했다. 상실감에 바다가 보이는 바깥 의자에 앉아 있는데,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젊은 엄마에게 소금빵을 사달라고 조른다. 엄마는 아이 코에 묻은 코딱지를 정성스레 떼어주고 있었다. 그 작은 장면에서 관계의 소중함, 일상의 다정함이 스며 나왔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아이가 커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엄마는 나이가 들어 혼자가 되었을 때 그들은 과연 오늘 같은 소중한 순간을 기억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소중함을 느끼며 살고 있을까? 아니면 세상사에 치여 그 소중함을 잃고 사는 건 아닐까.
해운대와 광안리를 잇는 광안대교에서는 11.15(토) 밤 제20회 부산불꽃축제가 열린다. 카페 앞에도 하나둘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중 한 젊은 부부는 반려견을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처럼 애지중지하며 안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저렇게 소중히 키우던 반려견도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소중함이 잠깐이고, 현실이 녹록지 않아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 테다.
생각해 보면, 소중한 것은 간수하기 어렵다. 쉽게 잃어버리기도 하고, 마음속에서 금세 희미해지기도 한다. 반대로 없어도 되는 것들에 집착하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 주변의 소중한 것들이 어느새 멀어지거나 사라지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정작 없어도 되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잠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