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덕수궁을 지나며
조선 왕조와 태국 왕조의 운명의 갈림길
일치감치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아침부터 푹푹 찐다. 매미도 이 폭염에 더운지 요란스럽게 운다. 소리를 보니 말매미다. 대한제국 시절에 시대가 하 수상해 몸 둘 곳이 없던 고종이 인근 러시아 공사관으로 아관파천했던 그때도 이리 매미는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워서 보단 국왕의 처지가 안쓰러워 운 게 아닌가 한다. 매미 DNA속 그 어디엔가 그때 우리의 초라함을 기억하고 있을 듯하다.
레이 달리오(Ray Dalio)의 최신 저서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대응하기 위한 원칙들(Principles for Dealing with The Changing World Order)'에 따르면, 어느 제국, 특히 당 이후 1400년 중국 역사의 왕조는 평균 250~250년 가면 쇠락의 길을 걷는다. 이에 비하면 조선은 그 몇 배나 유지된 장기 왕조다. 그런 조선은 왜 일본, 러시아, 중국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동네북 신세였나. 기득권이 현실에 안주하며 눈앞 이익에 눈이 멀어 주위 세상 읽기에 소홀했다. 내부적으로 자강, 혁신하지 못했다. 16세기부터 서구 식민세력이 동남아에 몰러올 때도 대부분 동남아 왕국들 또한 그러했다. 결과는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걸쳐 태국만 빼고 다 식민지가 되었다. 태국의 영민한 개혁 국왕들은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하지 않고 다가오는 외부 위협을 대비하고 내부 개혁과 세상 물정을 알도록 왕자들 중심으로 유학도 보내고 인재 양성을 했다. 인근 미얀마 꼰바웅 왕조의 사실상 마지막 왕인 민돈(영국 식민지 정부에 의해 마지막 왕 티보는 달구지타고 인도로 추방)은 태국 개혁왕처럼 되려고 했으나 당파 싸움으로 실패해 결국 영국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정쟁은 국경에서 멈춘다(politics stops at water's edge)'는 초당 외교의 중요성이 태국과 미얀마의 운명을 걸랐다. 태국 왕조와 달리 조선 왕조이나 미얀마의 망국의 길을 택해 외세에 좌지우지된 것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구한말 대한제국의 고종이 아관파천 후 덕수궁을 정궁으로 사용하게 된 씁쓸한 역사를 기억한다. 고종은 다시 아차 하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갈 요량으로 덕수궁과 러시아 공사관 간 터널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한 나라의 국왕이 일개 외국 공사관에 의탁하려 했던 그 시절이 다시 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출근차를 기다리는 줄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