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되돌아보니
작년 4월인가 5월 경엔 해외 발령을 오랫동안 기다리며 낙담하는 유능한 후배와 긴 북한산 등반을 했다. 잘 될 것이라는 좋은 말만 하며 함께한 시간이었다. 난 불쑥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했다. "비올 때는 비를 맞고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하나 마나 한 얘기를 덧붙였다. 그가 희망한 곳은 아니지만 외국으로 가서 종횡무진 왕성하고 보람차게 보이는 활동을 하는 모습을 팩북에서 보니 내 말이 맞았다 싶다. 댓글에 '좋아요'는 누르지 않았으나 마음속 응원을 하고 있다.
또한 자기 잘못으로 조기에 서울에 들어온 후배와 멀리 해외에서 마음을 못 잡고 있는 후배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세상을 다 건진 것처럼 의기양양하던 모습이 선한데 조그만 변화에도 자기 자신을 못 추스르고 흔들린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말해 주고 싶으나 그의 귀에 와닿기나 할까. 그는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끝내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이러한 낙담하는 사람, 실망하는 사람은 비단 공직에만 있는 게 아닐지 싶다. 어찌 보면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그저 배부른 얘기로 비칠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싫어 묻지 마 살인을 하는 희망을 앓은 어느 청년, 남부럽지 않은 선생의 길을 걷던 어느 날 학부모 갑질에 극단적 선택을 택한 교사, 하루하루 살기가 버거워 거리에서 빈 박스를 줍는 나이 든 어르신, 직장 스트레스를 풀려고 게임에 중독된 젊은 직장인, 이 모든 이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의 모습이다. 이들과 가족 친지들에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말하면 위로가 될까. 그렇지 않을지 싶다. 이들이 그저 먼 훗날 되돌아보면 그리 느낄 것이다.
내가 인생 60을 살다 보니 매 순간 중요하고 변곡점(tipping point)이라고 여겼던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무던 이도 애를 썼다. 이제 와 보니 나 자신 때문이 아니라 가족, 주위 동료, 친구들에게 비칠 내 모습 때문에 자신의 초라해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그들은 그만큼 신경 쓸 여유도 없는데 말이다.
솔로몬은 자신의 현재의 호사스럽고 모든 것을 가진 것도 지나갈 것이고 허사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의 반지에 그렇게 새겨 놓았다고 한다. 어려운 일도 지나가지만 좋은 일도 잠시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세상 일이 희망대로 풀리지 않고 나만 불행하다고 느낄 때 늘 그 자리에 보이는 하늘, 언제고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와 내가 두 발로 걷고 이렇게 건강한 일상을 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자신에게 되뇌고, 한걸음 더 나아가 할 수만 있다면 "이 또한 지나가게 하라"라는 어느 철학자의 조언을 소중히 여기며 마음을 단단히 하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