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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새해를 맞아

마음을 함께 나누며

by 동남아 사랑꾼


오늘부터 구정연휴다. 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2번째 맞는 구정이다. 10여 년 전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미국에 있는 이인 형님이 제사를 지내고, 나 또한 해외에 오랫동안 있어서 구정 연휴에 대한 특별한 의미 없이 그저 새털같이 많은 여러 날 중 하나였다. 올해도 그럴지 싶다.


하지만 어릴 적 시골에서 구정은 달랐고 설렜다. 서울서 고모님과 내 또래 사촌이 오고, 부산에선 작은 아버님 가족이 오고, 할머님이 대장을 하며 요란스러운 구정 설 준비로 집은 시끌벅적했고, 조총 발린 달콤한 유과의 맛, 석감주(경상도에선 식혜를 감주라고 하고, 며칠이고 항아리 밖에 왕겨를 둘러 태우면 하얀 식혜가 검게 된다. 그래서 석감주라고 한다) 만드는 왕겨 타는 냄새며 솥뚜껑을 엎어 놓고 부친 배추 전의 산뜻한 맛, 동그랑땡, 고기 꼬지, 소고기 산적이며 사과, 배, 가을에 따 뒤뜰 정독대속에 보관한 홍시 등 그야말로 평소 못 먹던 음식을 몰래몰래 먹다가 들키면 혼이 났던 추억이 있었다. 특히 서울서 부산서 선물 보따리 싸서 시외버스에 내리는 친척들을 마중하러 얼어붙은 징검다리를 폴짝폴짝 뛰며 건너던 개울과 버스에서 내리는 손님 중 친척을 기다리던 내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보인다.


까치도 구정 축하하 듯 집 마당에 있는 대추나무며 까치밥을 위해 남겨둔 몇 개의 감이 달린 감나무 위에서 '까악 까악'하며 손님 맞을 준비를 하던 그 옛날 어릴 적 구정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세월이 변해 그런 구정은 더 이상 없고, 구정 연휴에 도시에 나간 친척이나 가족은 발길이 뜸하다고 들었다.


도시엔 선 집 앞 구정 선물을 전달하는 택배 기사들의 분주함에서 구정이 찾아왔음을 느낀다. 어제 아들 회사에서 구정선물로 제주산 천혜향 2박스를 택배 배달한 나이 드신 택배 하는 분이 집사람에게 박스를 주며, 이제 택배일은 그만한다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과 우리 히꼬의 사람,반기는 짖는 목소리가 들린다. 택배 선물을 가지고 집안으로 들어온 집사람이 말하길, 그 여성분이 우리 여주집 택배 전담인데 올 때마다 우리 히꼬를 너무 이뻐하고 이에 보상하듯 히꼬도 꼬리를 흔들며 뽀뽀도 해줘 여주로 이사 온 지난 7개월 동안 일종의 라뽀(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분이 나이도 들고 영악해 보이지도 않아 늘 마음이 쓰였다는데 그분이 이제 이번 택배가 마지막이라며 작별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천혜향 한 박스를 드렸다고 한다. 구정 세모에 그분이 가족이 있으면 함께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지금 베트남의 구정은 옛날식 우리의 구정 보내기가 여전하다. 엊그제 자카르타에서 아세안 관련 회의에 가서 만난 베트남 학자는 구정 연휴가 2주 정도 되고 , 어떤 사람은 한 달 연휴를 내서 고향으로 바리바리 선물을 쌓아 가고, 세뱃돈도 모아 부모님과 조카들에게 주는 풍속이 여전하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20년 후 베트남 구정 세모도 지금의 한국처럼 대면 대면해 질 것 같은데 이 삭막한 세상에 1년에 한 번쯤은 가족품에서 따뜻함, 포근함을 더 오래 느끼며 잠시나마 행복해 지기를 바란다는 생각을 혼자서 했다.


구정 세모에 거리 청소를 하는 분들, 택배를 하는 분들, 쉴 새 없이 공항을 오가는 버스 기사 분들, 가족 없이 보내는 독거노인 분들, 서울역이며 그 어디서 외롭게 지내는 분들, 북한에 가족을 두고온 탈북민들, 그리도 우리 주위의 소외된 분들이 좀 더 행복해지길 바라며, 이기적인 구정 연휴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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