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리셋에 대하여
어젯밤, 서울 지인이 갑자기 연락이 와 부산역 차이나타운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식사를 마친 뒤, 그는 해운대 숙소 근처 카페에서 2차로 커피를 하자고 했다. 택시에 올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내렸는데—그 순간, 호주머니가 허전했다. 핸드폰이 보이지 않았다.
발만 동동 굴리는 사이, 우리를 내려준 택시는 이미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고 있었다.
지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보며 광안대교 야경이 보이는 카페까지 갔지만, 벨소리는 허공 속으로 흩어질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괜히 태연한 척 굴었다. 지인 앞에서 괜히 민망해지기 싫어서였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마누라에게 실토한 순간, 태연함은 끝났다.
“요새 현역처럼 쏘다니니 그럴 줄 알았다”로 시작된 잔소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당신은 사람 이야기 들을 땐 그렇게 몰입하면서, 정작 중요한 건 잘 잃어버린다니까.”
그 옆에서 히꼬(반려견)가 타이밍 좋게 “멍!” 하고 거들 때는 웃음이 나와야 하는지, 얄미워해야 하는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날 밤 깊이 잠들었다.
“뭐, 요즘 세상에 카드 기록도 있고, 결국 찾게 되겠지. 안 되면… 마누라 말대로 인간관계도 좀 리셋하고 더 단순하게 살지 뭐.”
이런 마음가짐 덕분이었을까.
아침에 출근해 내 핸드폰과 연동된 패드를 들고 MZ 직원에게 상황을 얘기했더니, 그는 능숙하게 ‘휴대폰 찾기’를 눌렀다.
“수영로 ○○운수에 있어요. 배터리 26% 남았네요.”
그리고 회사를 연결해 이것저것 묻더니, “찾아보겠다”는 답을 이끌어냈다.
10분이 지나도 1시간처럼 느껴졌다.
'배터리 다 나가면 못 찾는 거 아닌가…'
괜히 조급해지려는 찰나, 운수회사에서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제야 마음이 풀렸다.
그런데 거의 동시에, 서울 지인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카드회사에 지금 문의해 보면—”
그는 내가 핸드폰을 찾았다는 말도 끝내 듣지 못한 채 계속 이야기했다.
밤새 전화를 수십 번 걸다 잠을 설쳤다는 고백도 들을 수 있었다.
나중에 통화기록을 보니 54번.
마누라 몫을 빼면, 그가 50번 가까이 전화를 걸며 내 핸드폰을 찾아준 셈이다.
‘나이 70이면 잠이 보약인데… 괜히 고생만 시켜드렸구나.’
다음 부산 방문 때는 맛있는 회라도 대접하며 마음을 풀어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요즘 부쩍 이런 일이 잦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치매 초기일까, 아니면 40년을 함께 산 마누라 말대로 마음과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탓일까.
운 좋게 핸드폰은 다시 돌아왔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핸드폰 분실 같은 강제적 사건이 아니라, 스스로 인간관계를 한 번 리셋해 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다시 손에 쥔 핸드폰을 바라보며,
놓친 것과 붙잡아야 할 것의 경계를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