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좋아하시나요

나만의 클래식 에피소드

by 동남아 사랑꾼


부산 직장 근처 45년 전통의 '필하모니' 클래식 음악 카페에서 게이샤 커피를 천천히 음미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다가와 조심스레 묻는다.

“클래식… 좋아하시나요?”


“예, 좋아합니다.”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내 ‘클래식’은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평소 알고지내던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부산 문화회관 대표님이 내년 6월 말러 8번 교항곡 연주회를 초청하시며 분위기는 완전히 클래식으로 향했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말했다.

“저는… 한국 클래식을 좋아합니다.”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배아현의 모란동백.

동남아 출장 갈 때 비행기 안에서는 부모님이 즐겨 들으시던 트로트 모음집을 두 시간씩 듣는다. 집에서도 큰 볼륨으로 틀어놓으면 옆방의 집사람이 문을 쾅 닫을 정도다. 그 정도면 나름 ‘클래식’ 아닌가.


말을 꺼내고 보니, 클래식 카페 주인의 표정이 조금 흔들린다.


여기 올 때마다 커피 종류가 달라도 맛 하나는 끝내 줘서 “이건 서비스입니다” 하고 새 커피를 내주던 분이다. 클래식 이야기가 나오면 즉석 강의까지 해 줄 정도로 음악을 사랑하는 분인데, 내가 트로트 이야기를 장황하게 꺼냈으니 조금 당황할 만도 하다.


그래서 분위기를 바꾸려고 문득 생각난 책 이야기를 꺼냈다.

"당신의 가능성에 대하여(The Art of Possibility"에 실린 Mahler 교향곡 9번의 애절한 사연 말이다. 유튜브로 그 곡을 들었는데 생각보다 그리 슬프지 않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여쭸다.


“혹시… 여기서 한 번 들을 수 있을까요? 제 핸드폰과는 음향이 다르니 느낌이 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사장님의 표정에 환한 기운이 돌며 바로 스피커로 틀어주었다..역시, 카페의 음향은 핸드폰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는 슬픔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사장님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음악 평론가들이 만든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그냥 많이 들어보세요. 유명한 곡을 여러 번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본인만의 느낌이 옵니다.”


생각해 보니 그림도 그렇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느껴지는 법이다.


문득 90년대 로마 생활이 떠올랐다.

보스를 대신해 조수미, 김동규 같은 당대 최고 성악가의 공연에 꽃다발을 들고 갔던, 그 나름의 ‘꽃돌이’ 시절. 한 곡을 여러 번 이어서 듣다 보니, 어느 순간 그 음악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는 잊고 지내다, 부산에서 다시 클래식에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커피가 정말 맛있어서, 앞으로도 이 클래식 카페를 계속 찾을 것이다.


그러려면 이제 나도 트로트만 들을 게 아니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클래식에도 조금은 마음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게이샤 한 잔의 향이 잔잔히 퍼지는 카페에서,

나만의 ‘클래식’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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