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주말, 해운대에서 생긴 일

뜻하지 않은 굿바이 선물

by 동남아 사랑꾼


12월의 해운대는 바람이 있다.

그 바람이 해풍인지, 엘시티 빌딩 사이를 빠져나오는 빌딩풍인지 구분할 줄은 모르지만, 어쨌든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들뜨게 만드는 바람이다.


어제 저녁, 집 근처 명품숍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유리창 안에 걸린 군밤 장수 모자가 눈에 띄었다.

집사람은 마음에 들었는지 매장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히꼬와 함께 밖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나왔다.

모자를 써보지도 않고, 표정도 담담했다.


“왜 벌써 나왔어?”

잠시 뜸을 들이던 집사람이 말했다.

“가격 보고 기절할 뻔했지.”


이태리 명품 브랜드, 가격은 120만 원. 군밤 장수 모자 하나에 붙은 숫자치곤 꽤나 당당했다.


다음 날 오후, 히꼬와 함께 엘시티 근처 임시로 서는 시장을 걷다가 비슷한 모자를 발견했다.


집사람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가격은 2만 원.


메이드 인 차이나였지만, 브랜드 로고만 빠졌을 뿐 디자인은 제법 세련됐다.


이태리산과 정확히 60배 차이.


그 순간 집사람의 표정엔 ‘심리적 굿바이’가 선명히 떠올랐다.

이런 건 비싸서 좋은 게 아니라, 싸서 더 좋은 거라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마른 어물 가게 앞에서 멈춰 서더니

히꼬도 먹고, 나도 먹을 수 있다며 훈제 오징어 한 마리를 선뜻 산다.

이런 순간에 가족이 된다.


야외 커피숍에 앉았다.

바람이 분다.


집사람은 새로 산 모자를 쓰고 히꼬를 부둥켜안더니

“사진 한 장 찍어줘”라고 말한다.

괜히 더 잘 찍어주고 싶어진다. 평소엔 사진찍기 질색인데 굿바이는 굿바이인 모양이다. 히꼬와 같은 길색이라서 더 맘에 드는 눈치다.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 보내기 위한 사진 한 장.


집사람과 히꼬, 그리고 12월 해운대의 바람이 함께 담겼다.


오늘은,

군밤 장수 모자 하나 덕분에

12월 해운대가 유난히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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