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관계 그리고 외교
나이가 들수록 삶은 앞으로 보다 뒤를 더 자주 돌아보게 된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살아온 시간과 사람들, 그리고 평생 몸담아온 외교를 하나의 틀로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 선, 그리고 면.
내 삶은 수많은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어난 순간이 하나의 점이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이 각각 또 하나의 점이었다. 직장에 들어와 해외에서 살며 보낸 일곱 개 나라의 시간도 모두 점이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공적으로 사적으로 맺었던 관계들 역시 셀 수 없이 많은 점들이다.
점은 그 자체로는 조용하다.
서로 연결되지 않은 점들은 바닷가 모래 위에 그린 그림과 같다. 밀물이 한 번 지나가면 지워지고, 사람들이 몇 번 밟고 지나가면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점으로만 남아 있는 기억은 그렇게 사라진다.
그러다 인생의 어느 전환점에서,
문득 흩어져 있던 점들이 서로 이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 비로소 선이 보인다.
우연인 줄 알았던 만남이 하나의 흐름이 되고, 그저 스쳐 갔다고 생각했던 사건들이 서로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선들이 하나의 면을 이룬다. 그 면이 바로 ‘내가 살아온 삶’이라는 풍경이다.
그제야 기억은 추억이 되고, 경험은 이야기로 저장된다.
점으로만 두면 아무 의미가 없던 것들이 선을 이루고, 면을 이루는 순간 입체가 된다. 전체 모습이 비로소 보인다.
생각해 보면 외교도 그렇다.
한 번의 회담, 하나의 성명, 한 사람과의 인연은 모두 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점들이 신뢰라는 선으로 이어지고, 시간 속에서 축적되며 하나의 관계라는 면을 이루면
그것은 국가 간 자산이 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연락이 뜸해지고 멀어졌다고 해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언젠가 다시 연결될 선을 기다리는 점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제 나는 새로운 점을 찍는 속도보다
이미 찍어온 점들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더 자주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점을 늘리는 삶이 아니라, 점을 선으로, 선을 면으로 완성해 가는 삶일지도 모르겠다. 그 과정에서 내가 수많은 점들과 선들과 면들을 공공재로 삼아 주위의 커넥트로서의 역할을 하면 보람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 오버일까.
삶도, 관계도, 외교도
결국은 연결의 예술이다.
점으로 시작해, 선을 지나,
조용히 하나의 면이 되는 것.